입사하고 나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시설 보수공사를 하는데 계속 한 업체가 올라오는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번에는 그 업체와는 업종이 맞지않는 공사임에도 계약 서류가 올라왔다.
안되겠다 싶어 담당 직원을 불러 추궁했다.
처음에는 주저주저 말을 못하던 직원이 계속되는 질문에 대표이사의 지시를 받아
계속 시행한 것이라고 실토를 했다. 그러면서 하수구 청소가 취급 업종에는 없지만
그리 복잡한 공사가 아니니 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이번까지만 맏겨 보자는 것이었다.
직원의 난처한 입장을 생각해서 다음부터는 주의 할 것을 당부하고 결재를 해 주었다.
그러나 아니나 다를까 얼마 가지 못해 공사를 포기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다.
업종이 다르다 보니 공사에 대한 노하우도 그에 대한 장비도 구비된 게 없어
두 손을 들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결국 다른 전문업체를 불러 공사 마무리를 하였지만 그동안 일한 부분에 대해서는
경비를 지급해야 하니 4백만 원에 가까운 예산을 낭비하고 말았다.
사무실 이전시에도 외부 간판을 자신의 지인과 미리 약속을 해 놓는 바람에
그 사실을 모르고 있던 직원들이 업체를 선정하려 하자 화들짝 놀라면서,
앞으로는 그러지 않겠다고 하더니만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더 이상은 묵과할 수 없었다.
그런 행동을 묵인한다면 내가 여기에 와 있을 이유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구나 군에서는 특정 업체에 일감을 몰아주는 사례를 방지하기 위하여
'수의계약 총량제'란 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직원들 한테는 업체 선정시 공평하게 할 것과 반드시 사전 협의를 거치도록 지시하고
출입구 벽에는 다음과 같은 표어를 제작하여 부착토록 했다.
우리의 신조
"기회는 평등하게, 과정은 공정하게,
결과는 정의롭게"
정치계쪽에서 나온 말인것 같은데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얘기라 여겨져 기억하고 있었다.
이는 직원들의 경각심을 일깨워 주려는 의도도 있었지만 대표에게 무언가
깨달음을 주고자 하는데 더 큰 목적이 있었다.
하지만 직원들은 그래도 좀 변화가 있는듯 하였지만 대표란 사람은 감각이 없었다.
마을축제가 있었는데 예산이 수의계약 범위를 초과하는 행사였다.
담당 팀장이 와서 질문 하기를 쪼개어 나눠주면 안되겠냐는 것이었다.
자기의 의견이 아니라 누군지 모르게 알아봐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는 말도 덧붙였다.
얘기 안해도 짐작이 가는터라 픽 웃음이 나왔다.
같은 성격의 행사를 입찰하지 않고 나누어 수의계약을 하는 것은
당연한 규정 위반이다.
후일 팀장에게 확인을 해 보니 대표가 시킨 것이 맞다고 하였다.
핑계는 지역 업체에게 혜택을 주고 싶다는 것이었지만 아마도 또 지인들에게
인심을 쓰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최근에 석연찮은 사실을 알아냈다.
한 업체에게 일감이 몰리는 현상이 또 눈에 띄었는데 처음의 그 직원이 담당하는 일이었다.
공사장이 있는 지역에도 공사 업체가 얼마든지 있음에도 구태여 먼 곳에 있는 그 업체에게
일을 시키는 이유가 궁금하여 직원과 대화를 하던 중
그 업체의 사장이 대표이사와 형제간이란 걸 알게 되었다.
대표이사와 형제인 것을 인지 하였으면 당연히 배제를 시켰어야지 왜 지속적으로
일을 주느냐고 했더니만 일을 잘 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더 이상 캐묻지 않고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으니 앞으로는
주의 하라고만 당부했다.
'오얏나무 아래서 갓끈을 고쳐매지 말라'는 말은 그냥 생겨난 게 아니라,
선조들이 오랜 경험을 통해 후대에게 전해주는 교훈적 언어이다.
현대에서 말하는 '이해충돌 방지'와도 상통하는 말일 것이다.
일을 잘 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본인이 대표이사로 있는 조직의 일을
가족이 하려고 할 때에는 당연히 배제 하여 일말의 오해 소지라도 미연에 방지하는 게
정상적인 의식의 발로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