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수집

신동엽 서사시 금강 제 10 장

서해안 나그네 2024. 10. 15. 00:13

 

가을이다

하늘에는

흰  구름이  두  송이

열차  속  사귄  손님처럼

속삭이며  동쪽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북한산  골짝

머루,

도토리,  다래,

개암,

열매  터지는  소리......

버섯,

억새,  통통  여문  벌레소리.

 

하늬는

가을  산을

헤매고  있었다.

허리엔

두  켤레의  짚신

그리고  괴나리봇짐.

 

수건을  꺼내어

이마의  땀을  닦았다.

그런데  웬일일까.

 

여인,

단풍  물든  자작나무  가지를  헤치며

옷보자기  끼고

산  속에  나타난  궁녀.

 

맑은  하늘  밑

물건  없는  산  속을

수놓은

하늘거리는  짐승.

땅의  끝에서

땅의  끝으로

피란길  떠나는

행색이었을까.

 

지친  이마,

쏟아진  어깨,

 

하늬를  보고도

그녀는  놀라지  않았다.

 

때까치가

머리  위  울었다.

이  산에서

저  산으로  날리는

붉은  단풍잎은

날짐승인가,

전설인가,

 

금빛  꾀꼬리가

한  쌍

영원의  공간  속을

횡단해  가고  있었다.

 

두  사람은

가을을  열어놓은

산골짜기에서

한  발  한  발

다가갔다.

 

바위  붙들고

그녀가

멎어섰다.

한쪽  무릎  접으며

다소곳  앉았다.

 

산  속에  핀

무지개.

향내가  골짝을  흔들었다.

눈빛이

바위  속  젖어들었다.

 

보라빛  들국화

한  송일  꺾어들고

하늬는  다가갔다.

바위  위  놓여  있는

여인의  손  위

자기  손을  포개  얹었다.

 

다수운  살결,

여인의  마음은

높게  물결치고  있었을까.

 

윤기  짙은

검은  머리  위

굽어  든  하늘.

 

하늬는  여인의

숱  많은  머릿다발  속

보라빛  들국활

꽂아  주었다.

 

그녀는

눈을  감고  있었다.

입가엔

눈물처럼  스며  밴

미소.

 

얼마가  지났을까,

億劫쯤  지났을까,

 

그녀는  눈을  떴다

미소.

발밑  억새꽃  한  모감

뽑아공손히  두  팔  드려

남자에게  바쳤다.

 

하늬는

억새꽃을  받아

입에  물고,여인의  손목  쥐며

얼굴  들여다보았다.

 

흘러가는  강물.

가까운  거리에서

원초스런  눈초리로

일진,  일퇴,

속삭이고  있는

둘의  눈동자.

 

열려  있는  창문이었다.

자기들의

내실의

공간을

보여주고  있는

열려  있는  창문

둘이서,  시간을  거스르며

抒情을

두레박질하고  있었다.

 

사슴이  이따금  찾아와

입술  적시고  가는

숲  속의  호수,

 

열두  개의  보석을

쪼개고  들어가면,

자리하고  있을

이슬  젖은  선녀의

안마당,

 

지나간  바람과

내일의  하늘이

사이좋게  드나들고  있을

투명한  하늘,

 

이야기가

소용  없었다

촉촉히  젖은

둘의  입술,

가늘게  떨리면서

열렸단  멎고

열렸단  말  뿐,

 

손과  손

마음과  마음

역사와  역사는

얽혀  흐르면서

뼈  없이  녹아,

 

구석과  구석을  적시고

지상에서  천상을  향하여

피어오르는  안개처럼

階調의  음악이  되어

 

무한한  공간을

흘러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