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늬는
한쪽 발을 조금
절었다.
세 살 때
김진사가 마당에
내 던졌었다.
대문 여닫는 소리
박쪽 굴러다니는 소리
검불이 이리저리 날리고
먼 마을에서
대감집 닭이 세월도 없이
길게 울 때,
이런 땐
틀림없이 나무뿌리
소나무껍질, 일찍 나온 냉이
쑥뿌리 찾는 굶주린 행렬들이
산과 들판
시래기처럼 하이얗게
널리고,
누구네집 재를 내는
머슴은
대왕펄 보리밭에서
부옇게 재 뒤집어쓰고
재채기에 쳇머리 흔들고 있으리라.
그렇지
또 있다.
갈대꽃 날리는 강언덕
옷보자기 낀 아낙네가
치맛자락 날리며,
지금도 나룻배
기다리고 있겠지,
맞바우.
하늬는,
김진사네집 머슴
돌쇠가 주워다 기르고 있었다.
세 살짜리는
날마다
배가 고팠다,
아랫목에 묻어 둔
콩강개도 없이.
그날은
김진사집에
서울 사는 정대감님이 오시는 날.
동네 老少婦女 다 동원해서
한 달 전부터 길을 닦고
환영준비에 바빴다.
마을 사람은 돈 있는 사람의
종이었으니까.
배가 고픈 하늬는
엎디어서 울었다
코를 땅에 박고
지치도록 서럽게
서럽게 울었다.
연놈들이 말 잘 안듣는다고
노발대발, 치알치는 유첨지를 호령하던
김진사가 신발한 채 행랑방에 뛰어들어
우는 아이 마당 밖으로 집어던져
돼지우리 속 떨어졌다.
삼신할머니가 받았음일까,
발목 복숭아뼈가 조금 삐져나왔을 뿐,
우는 소리가 뚝 그치고
한 손으로 머리 긁으며
일어나 앉았다.
그날부터 하늬는
부소산 너머 뒷개 사는
조할머니가 앞치마에 꾸려다
길렀다.
조할머니의 남편은 광해군 때
애매한 역모죄로 귀양가 죽었다,
더없이 선량한 선비, 눈이 너무
맑아서 죄지을 줄 모르는 선비는
돼지죽 속 眞珠처럼 밀려나는 법일까.
하늬는 열두살 나던 해
조할머니를 잃었다.
아홉 해 동안 조할머니는
서기 어린 하늬의 뇌 속에
漢書, 佛經, 수십 권을 읽혔다.
하늬의 아버지에 대해선
아무도 몰랐다,
비가 오는 날, 돌쇠 앞에
흠씬 젖은 여인이 나타나
무명보자기에 싼 걸
맡기고 갔다.
<이 아이 조상은 묻지 말아
주세요, 제가 돌아올 때까지만
보살펴 주세요.
은공 잊지 않겠어요,
혹 못돌아 오더라도.
이름은 하늬예요,
성은 申.>
그녀는, 고개를 돌린 채
무명보자기와, 몇 잎의
동전 방바닥에 놓고
비 속을 사라졌다.
아기의 손엔
콩알 만한, 노리개 은방울이
쥐어져 있었다.
하늬는,
철들면서부터 돌쇠를
아버지처럼 모셨다,
그의 몸에서, 콩알 만한
그 수수께끼 같은 노리개 은방울이
떠날 날 없었듯.
'명품수집'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신동엽 서사시 금강 제 10 장 (2) | 2024.10.15 |
---|---|
신동엽 서사시 금강 제 9 장 (0) | 2024.10.06 |
신동엽 서사시 금강 제 7 장 (3) | 2024.09.29 |
신동엽 서사시 금강 제 6 장 (8) | 2024.09.27 |
신동엽 서사시 금강 제 5 장 (1) | 2024.09.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