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수집

신동엽 서사시 금강 제 8 장

서해안 나그네 2024. 10. 3. 23:35

 

하늬는

한쪽  발을  조금

절었다.

 

세  살  때

김진사가  마당에

내  던졌었다.

대문  여닫는  소리

박쪽  굴러다니는  소리

검불이  이리저리  날리고

 

먼  마을에서

대감집  닭이  세월도  없이

길게  울  때,

 

이런  땐

틀림없이  나무뿌리

소나무껍질,  일찍  나온  냉이

쑥뿌리  찾는  굶주린  행렬들이

산과  들판

시래기처럼  하이얗게

널리고,

 

누구네집  재를  내는

머슴은

대왕펄  보리밭에서

부옇게  재  뒤집어쓰고

재채기에  쳇머리  흔들고  있으리라.

 

그렇지

또  있다.

갈대꽃  날리는  강언덕

옷보자기  낀  아낙네가

치맛자락  날리며,

지금도  나룻배

기다리고  있겠지,

맞바우.

 

하늬는,

김진사네집  머슴

돌쇠가  주워다  기르고  있었다.

 

세  살짜리는

날마다

배가  고팠다,

아랫목에  묻어  둔

콩강개도  없이.

 

그날은

김진사집에

서울  사는  정대감님이  오시는  날.

 

동네  老少婦女  다  동원해서

한  달  전부터  길을  닦고

환영준비에  바빴다.

마을  사람은  돈  있는  사람의

종이었으니까.

 

배가  고픈  하늬는

엎디어서  울었다

코를  땅에  박고

지치도록  서럽게

서럽게  울었다.

 

연놈들이  말  잘  안듣는다고

노발대발,  치알치는  유첨지를  호령하던

김진사가  신발한  채  행랑방에  뛰어들어

우는  아이  마당  밖으로  집어던져

돼지우리  속  떨어졌다.

 

삼신할머니가  받았음일까,

발목  복숭아뼈가  조금  삐져나왔을  뿐,

우는  소리가  뚝  그치고

한  손으로  머리  긁으며

일어나  앉았다.

 

그날부터  하늬는

부소산  너머  뒷개  사는

조할머니가  앞치마에  꾸려다

길렀다.

 

조할머니의  남편은  광해군  때

애매한  역모죄로  귀양가  죽었다,

더없이  선량한  선비,  눈이  너무

맑아서  죄지을  줄  모르는  선비는

돼지죽  속  眞珠처럼  밀려나는  법일까.

 

하늬는  열두살  나던  해

조할머니를  잃었다.

아홉  해  동안  조할머니는

서기  어린  하늬의  뇌  속에

漢書,  佛經,  수십  권을  읽혔다.

 

하늬의  아버지에  대해선

아무도  몰랐다,

비가  오는  날,  돌쇠  앞에

흠씬  젖은  여인이  나타나

무명보자기에  싼  걸

맡기고  갔다.

 

       <이  아이  조상은  묻지  말아

         주세요,  제가  돌아올  때까지만

         보살펴  주세요.

         은공  잊지  않겠어요,

         혹  못돌아  오더라도.

         이름은  하늬예요,

         성은  申.>

 

그녀는,  고개를  돌린  채

무명보자기와,  몇  잎의

동전  방바닥에  놓고

비  속을  사라졌다.

 

아기의  손엔

콩알  만한,  노리개  은방울이

쥐어져  있었다.

 

하늬는,

철들면서부터  돌쇠를

아버지처럼  모셨다,

그의  몸에서,  콩알  만한

그  수수께끼  같은  노리개  은방울이

떠날  날  없었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