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수집

신동엽 서사시 금강 제 9 장

서해안 나그네 2024. 10. 6. 23:07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누가  구름  한  송이  없이  맑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네가  본  건,  먹구름

그걸  하늘로  알고

일생을  살아갔다.

 

닦아라,  사람들아

네  마음  속의  구름.

 

아침  저녁

네  마음  속,  구름을  닦고

티없이  맑은  영원의  하늘을

볼  수  있는  사람은,

 

외경(畏敬)

을  알리라.

 

차마  삼가서

발걸음도  조심.

마음  아모리며,

 

서럽게,

아  엄숙한  세상을

서럽게,

살아  가리라.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누가  구름  한  자락  없이  맑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불쌍할  뿐이었다.

눈으로  보고도,

석양,

읍에서

마을로  들어오는  고갯길에서

하늬는  기다리고  있었다.

 

향나무가  두  그루  미루나무가  하나

무덤이  밭  가운데  있었다.

 

스물다섯에  만난  여자,

그리고  일년을,  깨알  쏟아지듯

다정하게  살림한  여자,

하늬는  괴로웠다.

 

벌거벗었던  마누라의

붉은  육체,

몸부림치고  있었다

흐느끼고  있었다,

하필이면  그  늙어빠진

김진사와,

 

그러면  그  김진사의  꼬임으로?

천둥번개  우르렁거리고

홍수  같은  소나기  밤새

퍼붓던  어느날  밤

그녀는,  하늬의  품  속에서

무서운  이야길

고백했었다.

 

그리고  자길  죽여달라고

가슴  쥐어뜯으며

통곡했었다.

 

살아가기란  어려운  일인가,

눈을  뜨지  못한  짐승,

그렇다,

우리  주위엔  얼마나  많은

눈  뜨지  못한  짐승들이

사람  탈을  쓰고

밀려가고  있는가.

 

허나  어찌  할건가

우리는  또  무언가.

 

문제는  끝나지  않는다,

저  여자만의  문제로

끝나는  건  아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피  속서  저러고  싶어

꿈틀거리고  있을건가.

 

그렇다면,

봇물을  막는  뚝이여

너는  죄인.

한  생명을  독점하려는

소유욕이여

네가  죄인.

 

터놓아라,  강물.

제멋에  이리저리

흘러다니도록,

터놓아라,  강물.

하늬는  기다렸다.

두  남녀의,

그  목줄기에  솟았던

굵은  심줄의  가련함을

생각하면서  기다리고  있었다.

 

하늬는  하늘을  봤다

영원의  하늘,

내것도,

네것도  없이,

거기  영원의  하늘이

흘러가고  있었다.

 

하늬의  발  밑엔,

꿈틀거리던

두  마리의  버러지.

그렇다,

불쌍하달  밖에  없었다

자기의  생  영위키  위해

삐걱삐걱  땀  흘리며

하루를  숨쉬던  허리.

 

내것

네것

없는  하늘  소리가

무한에서  와서

무한으로  흘러간다.

 

어디로  가는

바람인지,  수수잎을

흔들면서  한  무더기가

지나간다.

 

오,  아름다운  노을

저  노을을  볼  때  우리는  이  세상,

어떻게  미워할  수  있단  말인가,

오,  아름다운  하늘

저  노을을  볼  때  어떻게  이  세상,

서러워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하늬는  기다리고  있었다,

바람같이  투명한  마음으로.

한  덩이의  하루살이떼가

원무하며  풀밭으로  쏟아진다,

 

목화밭과  수수밭  사잇길에서

그녀는  나타났다,

조기를  한  꾸러미  들고  있었다.

 

이쪽을  보았다

금강의  낙조  속에서

보았다.

 

불빛이  튀는  걸까

먼빛으로도  그건

탄력있는  징그러움이었다.

 

웬일일까,

그녀는  돌아서서  뛰었다

조기  꾸러미를  논배미  던지며

달렸다.

 

살  맞은  뱀.

어디로  숨는  걸까,

무얼  보았단  말인가

절벽,

먹구름,

고향,

돌,  절벽.

 

그녀가  솔밭  사이로

사라져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

그는  뛰기  시작했다.

 

콩밭이  지나갔다,

황토  흙,  뫼,  대추나무,

우물바닥이  지나갔다.

척추  퍼붓는  땀의  비,

목화밭,  언덕,

소나무  숲,  개울,

 

강이  보였다,

흰  물구비,

언덕  위  바위,

바위의  싸늘한  감촉,

 

두  짝의  흰

고무신을  보았다.

 

물은  조용히  흘러가고  있었다,

하늘엔  이름모를  새가

날고  있었다,

 

강  건너  언덕에선

황소가  풀을  뜯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