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누가 구름 한 송이 없이 맑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네가 본 건, 먹구름
그걸 하늘로 알고
일생을 살아갔다.
닦아라, 사람들아
네 마음 속의 구름.
아침 저녁
네 마음 속, 구름을 닦고
티없이 맑은 영원의 하늘을
볼 수 있는 사람은,
외경(畏敬)
을 알리라.
차마 삼가서
발걸음도 조심.
마음 아모리며,
서럽게,
아 엄숙한 세상을
서럽게,
살아 가리라.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누가 구름 한 자락 없이 맑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불쌍할 뿐이었다.
눈으로 보고도,
석양,
읍에서
마을로 들어오는 고갯길에서
하늬는 기다리고 있었다.
향나무가 두 그루 미루나무가 하나
무덤이 밭 가운데 있었다.
스물다섯에 만난 여자,
그리고 일년을, 깨알 쏟아지듯
다정하게 살림한 여자,
하늬는 괴로웠다.
벌거벗었던 마누라의
붉은 육체,
몸부림치고 있었다
흐느끼고 있었다,
하필이면 그 늙어빠진
김진사와,
그러면 그 김진사의 꼬임으로?
천둥번개 우르렁거리고
홍수 같은 소나기 밤새
퍼붓던 어느날 밤
그녀는, 하늬의 품 속에서
무서운 이야길
고백했었다.
그리고 자길 죽여달라고
가슴 쥐어뜯으며
통곡했었다.
살아가기란 어려운 일인가,
눈을 뜨지 못한 짐승,
그렇다,
우리 주위엔 얼마나 많은
눈 뜨지 못한 짐승들이
사람 탈을 쓰고
밀려가고 있는가.
허나 어찌 할건가
우리는 또 무언가.
문제는 끝나지 않는다,
저 여자만의 문제로
끝나는 건 아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피 속서 저러고 싶어
꿈틀거리고 있을건가.
그렇다면,
봇물을 막는 뚝이여
너는 죄인.
한 생명을 독점하려는
소유욕이여
네가 죄인.
터놓아라, 강물.
제멋에 이리저리
흘러다니도록,
터놓아라, 강물.
하늬는 기다렸다.
두 남녀의,
그 목줄기에 솟았던
굵은 심줄의 가련함을
생각하면서 기다리고 있었다.
하늬는 하늘을 봤다
영원의 하늘,
내것도,
네것도 없이,
거기 영원의 하늘이
흘러가고 있었다.
하늬의 발 밑엔,
꿈틀거리던
두 마리의 버러지.
그렇다,
불쌍하달 밖에 없었다
자기의 생 영위키 위해
삐걱삐걱 땀 흘리며
하루를 숨쉬던 허리.
내것
네것
없는 하늘 소리가
무한에서 와서
무한으로 흘러간다.
어디로 가는
바람인지, 수수잎을
흔들면서 한 무더기가
지나간다.
오, 아름다운 노을
저 노을을 볼 때 우리는 이 세상,
어떻게 미워할 수 있단 말인가,
오, 아름다운 하늘
저 노을을 볼 때 어떻게 이 세상,
서러워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하늬는 기다리고 있었다,
바람같이 투명한 마음으로.
한 덩이의 하루살이떼가
원무하며 풀밭으로 쏟아진다,
목화밭과 수수밭 사잇길에서
그녀는 나타났다,
조기를 한 꾸러미 들고 있었다.
이쪽을 보았다
금강의 낙조 속에서
보았다.
불빛이 튀는 걸까
먼빛으로도 그건
탄력있는 징그러움이었다.
웬일일까,
그녀는 돌아서서 뛰었다
조기 꾸러미를 논배미 던지며
달렸다.
살 맞은 뱀.
어디로 숨는 걸까,
무얼 보았단 말인가
절벽,
먹구름,
고향,
돌, 절벽.
그녀가 솔밭 사이로
사라져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
그는 뛰기 시작했다.
콩밭이 지나갔다,
황토 흙, 뫼, 대추나무,
우물바닥이 지나갔다.
척추 퍼붓는 땀의 비,
목화밭, 언덕,
소나무 숲, 개울,
강이 보였다,
흰 물구비,
언덕 위 바위,
바위의 싸늘한 감촉,
두 짝의 흰
고무신을 보았다.
물은 조용히 흘러가고 있었다,
하늘엔 이름모를 새가
날고 있었다,
강 건너 언덕에선
황소가 풀을 뜯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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