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수집

신동엽 서사시 금강 제 11 장

서해안 나그네 2024. 10. 20. 22:44

<궁에서

도망나오는  길이예요

눈독들이는  그  늙은이들의

입김이  싫어  못  배기겠어요.

 

추석이  지나니  고향  생각도  나고.

아버지  장사지내러  왔었어요,

제  고향은  황해도  해주.

 

경복궁  개축공사  부역일에

아버지가  끌려왔었어요,

 

육십  넘은  아버지.

등짐하다  바위  밑  깔려

객사하셨대요,

 

한강가

제  손으로  묻어  드렸어요.

돌아가는  길  어느  노파에  끌려

궁으로  들어갔죠.>

 

<우물  점이  있군요,

당신의  이마엔.

언제부터  그  하늘의  그늘

생겼는지  기억하세요?>

 

<말씀해  주세요  선생님,

선생님  말씀해  주세요,

제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제  성이  도장인자예요.

이름은  진아.>

 

<이상하군요,  어젯밤  나는

삼청동  객삿집에  묵으면서

꿈을  꿨소.

 

나라  위  자욱히

안개가  덮여  있더군,

고구려성의  왕관을  주웠어요.

휘황찬란한.

 

금강산에서  내려왔다는

흰  말이  내  앞에  무릎꿇더군.

그래  신발  대신  왕관을  신었는데

한쪽  발에  신을  신이  없어

걱정하다  잠을  깼소.>

 

<저도  꿈을  꿨어요.

백제땅  금강이래요.

 

목욕하고  나오다

모래밭에서

사슴의  뿔을  얻었어요.

 

그  사슴의  뿔이  갑자기

용이  되어  하늘로  꿈틀거리며

오르더군요.

선생님,  저는  지금

도망가는  몸이예요.

고향도  안되고

어디  가면?>

 

<우스운  인연이군요.

고구려의  밭,

백제의  씨,

 

우리들의

편안할  곳은  지금

아무데도  없오.

하늘과  땅,

 

눈먼  구데기떼처럼

땅에  엎디어  매질  받으며

이리  채이고  저리  채일  뿐

벙어리가  된

노예들의  땅.

 

그러나,

가십시다.  진아라고  했죠?

금강  언덕

초가삼간.

 

아직

차령산맥  남쪽에

서기가------>

 

추석.

가랑잎  위에서,  둘의  알몸뚱이는

꽃뱀처럼  얽혀  빠알갛게  익어가고

있었다,

 

가을의,

바람과  햇빛과  산  속의

정기를  빨아들이면서,  둘의  피는

음악처럼  굽이쳐  흘러가고

있었다,

 

이때

설악산

양양골에선

海月이  양지밭에  앉아짚신을  삼고  있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