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엽 서사시 금강 15

신동엽 서사시 금강 제26장

황폐한땅에도 아침은 온다,아득한 평야에 새벽이 열리면어디서라 없이 들려오는 가벼운 휘파람소리, 물 길어 오는 아낙의 물동이 가에반도의 아침이 열린다, 냇가에선일찍 깬 물새가강언덕 인사를 보내며이리저리 준비운동을 하고, 외양간에선건장한 황소가 긴심호흡을 한다, 진아는아들을 낳았다,복슬복슬한 아기 하늬, 금강의흰 물굽이가 가물가물 내려다보이는 동혈산,쉰 길 바위 아래 초가집, 사리원댁 할머니의 도움으로꼬마 하늬가 방긋방긋웃기 시작했다. 애정쏟고 있는 여자의 얼굴은벌어진 석류알처럼 피어나고눈동자는 물먹은 별습기차게 빛난다, 자침이겨냥을 얻어조금 흔들렸단 멎고기둥 못을 뽑아 달아나려고 하듯, 넘칠 곳찾던 저수지의 물이터 놓은 물꼬를 얻어미친 듯 춤추며 휘말려가듯, 암 전기가수 전기를 만나힘을 규합하며 커다랗게빛..

명품수집 2025.06.16

신동엽 서사시 금강 제25장

진아는금강가에 서 있었다,억수로 쏟아지는 비수면은, 수억만 개의 물팡개싣고 흘러간다 조그만보자기 끼고 나룻배기다리는 진아의 머리, 목덜미앞가슴 허리 아래를강물은 흘러내린다, 살아 있을까 하늬는.아직, 그리고나 생각하고 있을까, 불타던부여의 집,통곡하던 마을과 마을,그럼 우리가 갈 곳은? 하늬는자기 죽음을 예감했던걸까,진아는 허리 더듬어 치마 속으로은방울 만져보았다, 아기 낳거든자기와 똑같은 이름, 하늬로부르라 했다, 그리고 은방울 달아주고,해주길 떠나던 날 아침. 즐거웠던시절은 철없이 뛰놀던 해주땅,아빠는 지게 바작 위나 태워산나무 다니셨지, 사과밭,낯 모르는 할아버지가치마 한 아름 사과안겨주고 즐거워하셨지, 소꼽동무들,각시풀 다듬던 그 손매디, 맑디맑던그 눈동자,윤기 짙은 머릿다발, 그러나어려선 그렇..

명품수집 2025.06.15

신동엽 서사시 금강 제23장

시월 25일공주 우금티의 결전 이후일본군과 이왕병은, 패잔한 농민군, 농민군 가족,농민군에게 밥 지어준 부녀자들까지 수색, 추격,총으로 쏘고 칼로 찔렀다, 가는 곳마다, 마을은태풍이 지나간 벌판처럼쓸쓸하였고,두어 그루의 나무가중둥이 부러진 채 추레하고서 있었다. 집집마다 연기가 끊어지고인적도 끊어졌다, 이따금 지나가는 사람이 있어도무엇에 쫓기는 사람처럼땅을 굽어보고, 그러나 눈은 불안에떨면서, 그렇지쫓기는 사람처럼 바삐 바삐지나갔다, 눈발 날리는11월 한 달, 가마니 짜고짚신 삼는 12월 한 달, 다음해정월 대보름, 2월, 3월자운영 피는 춘궁기까지,이왕병은 왜군과 손 잡고 다니면서팔도강산 방방곡곡을총검으로 쑤셨다, 영동에선아궁이 속 숨어 있는일곱살짜리 계집앨 끌어내아버지 있는 곳 대지 않는다고기관총 갈..

명품수집 2025.05.26

신동엽 서사시 금강 제21장

사흘 밤낮의 싸움 끝에전봉준은총 후퇴령을 내렸다, 하늬는 이때 삼십명의장정을 이끌고적진 깊숙이, 봉황산 골짜기에 들어가일본군의 대포 2문을 파괴하고, 관군의 본부 향해화살 편지 쏘았다, 《왜놈들 미워하긴 그대들이나 동학군이나 다를 바 없을 줄 아노라, 총부리 어서 왜놈들의 등으로 돌리오.》 뒷날 전해진 이야기로, 3천의 관군거느렸던 서산 군수 성하영은 편지 보고고민했다, 그러나 그의 곁엔 일군의감시병이 24시간 떠날 날 없었다, 갑자기 잠잠해진함성소리, 하늬는 척추에 땀 느끼며유격대의 후퇴를 지휘했다. 사십보 앞 개울에서포탄이 터졌다, 엎디었다, 뒤에서 또 터졌다어디서 또 터졌다.콩볶는 듯한기관총 소리,마당쇠의 고개가 부러져 있었다, 하늬는 보았다능선 바위 사이 히노마루기관총 사수,..

명품수집 2025.05.18

신동엽 서사시 금강 제20장

청일전쟁이일본의 승리로 끝나고반도에서 청군이 퇴각한다음 날, 일본에선수뇌회담이 열렸다. 《쑥대밭 돼버리면 어때, 차라리 할 수 있으면 초토로 만들어버리렴아, 본토에서 반쯤 이민시키게, 그래서, 그 동학당인가 농민군인가 씨 말려버린 담에, 흥정하는거야, 왕족과. 요리상은 이미, 받아놓은 요리상, 하하하.》 우리는 들었다일본 어느 고장엔가, 지금도잔디 입힌코 무덤, 일찌기식인종이었던섬나라, 조선 사람의대가리, 그 대가리가 왜탐이 났을까, 칼로 베서병아리새끼처럼엮어 가던임진년. 마늘접처럼죽으로 엮여 가던사람은 누구? 마늘접을배에 싣고 가던 사람은누구? 짐이 무거웠겠지대가린 버리고코만 베 갔다, 실로 꿰서코를 가지고 가면일본 천황 이하대신들이..

명품수집 2025.05.02

신동엽 서사시 금강 제 19 장

금마.하늬는  전우들과  작별부여로  가는  길마한,  백제의  꽃밭금마를  찾았다. 언제였던가가을걷이  손  털고재작년  늦가을진아는  하늬의  손가락  끼어미륵사탑  아래그림으로서  있었지, 그날은저  탑날개이끼  위꽃잠자리가앉아  있었다, 7세기  초백제인들  슬기로  건축8세기  초낙뢰로  반파,거대한  8층탑은半空에  그  부러진한쪽의  어깨.진아의  아름다움에홀려,  마을  사람들은떠날  줄  몰랐었다, 동지섣달이면진아의  분신이세상에  나온다, 아들?딸? 남남  북녀,북남  남녀,먼  지방  사람끼리  만나면우생학상  좋은2세를  낳는다. 그래서  우리조상들은가족  근친혼마을  혼인꺼려  왔고, 눈이  가는  여잔눈이  사슴  같은  사내, 입술이  얇은  사낸입술이  넓고  두터운  여자,..

명품수집 2025.03.23

신동엽 서사시 금강 제 12 장

독일,  윈극장에선교향곡  을  연주하는교향악단원의  손과  귀,베토벤,  그는  1827년에  죽었던가,그  음악은  이조말의  반도  하늘에도메아리쳐  오고  있었을까, 베트남  정글  속에선,불란서  식민지  침략군  맞아  싸우는원주민의  우렁찬  함성, 일본에선2백  년의  봉건쇄국주의가문을  깨치고미일수호조약을  체결,기름기  오른  군벌자본가들이요정에  앉아  공장을설계하는  날, 경복궁에선조대비가,  중국  곤륜산서  따온사슴  사향,양지바른  대청마루  앉아천산남로  거쳐온,  중국상인과흥정하고  있을  때. 1854년,전봉준은서해가  보이는  고부  땅두승산  기슭에서  태어났다. 대대로  내려오는농민의  아들,키는  절구통  같은  오  척,시원한  이마맑고  두리두리한  눈동자가벌어..

명품수집 2024.11.01

신동엽 서사시 금강 제 10 장

가을이다하늘에는흰  구름이  두  송이열차  속  사귄  손님처럼속삭이며  동쪽으로흘러가고  있었다. 북한산  골짝머루,도토리,  다래,개암,열매  터지는  소리......버섯,억새,  통통  여문  벌레소리. 하늬는가을  산을헤매고  있었다.허리엔두  켤레의  짚신그리고  괴나리봇짐. 수건을  꺼내어이마의  땀을  닦았다.그런데  웬일일까. 여인,단풍  물든  자작나무  가지를  헤치며옷보자기  끼고산  속에  나타난  궁녀. 맑은  하늘  밑물건  없는  산  속을수놓은하늘거리는  짐승.땅의  끝에서땅의  끝으로피란길  떠나는행색이었을까. 지친  이마,쏟아진  어깨, 하늬를  보고도그녀는  놀라지  않았다. 때까치가머리  위  울었다.이  산에서저  산으로  날리는붉은  단풍잎은날짐승인가,전설인가, ..

명품수집 2024.10.15

신동엽 서사시 금강 제 9 장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누가  구름  한  송이  없이  맑은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네가  본  건,  먹구름그걸  하늘로  알고일생을  살아갔다. 닦아라,  사람들아네  마음  속의  구름. 아침  저녁네  마음  속,  구름을  닦고티없이  맑은  영원의  하늘을볼  수  있는  사람은, 외경(畏敬)을  알리라. 차마  삼가서발걸음도  조심.마음  아모리며, 서럽게,아  엄숙한  세상을서럽게,살아  가리라.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누가  구름  한  자락  없이  맑은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불쌍할  뿐이었다.눈으로  보고도,석양,읍에서마을로  들어오는  고갯길에서하늬는  기다리고  있었다. 향나무가  두  그루  미루나무가  하나무덤이  밭  가운데  있었다. 스물다섯에  만..

명품수집 2024.10.06

신동엽 서사시 금강 제 8 장

하늬는한쪽  발을  조금절었다. 세  살  때김진사가  마당에내  던졌었다.대문  여닫는  소리박쪽  굴러다니는  소리검불이  이리저리  날리고 먼  마을에서대감집  닭이  세월도  없이길게  울  때, 이런  땐틀림없이  나무뿌리소나무껍질,  일찍  나온  냉이쑥뿌리  찾는  굶주린  행렬들이산과  들판시래기처럼  하이얗게널리고, 누구네집  재를  내는머슴은대왕펄  보리밭에서부옇게  재  뒤집어쓰고재채기에  쳇머리  흔들고  있으리라. 그렇지또  있다.갈대꽃  날리는  강언덕옷보자기  낀  아낙네가치맛자락  날리며,지금도  나룻배기다리고  있겠지,맞바우. 하늬는,김진사네집  머슴돌쇠가  주워다  기르고  있었다. 세  살짜리는날마다배가  고팠다,아랫목에  묻어  둔콩강개도  없이. 그날은김진사집에서울 ..

명품수집 2024.1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