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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엽 서사시 금강 제20장

서해안 나그네 2025. 5. 2. 01:14

청일전쟁이

일본의 승리로 끝나고

반도에서 청군이 퇴각한

다음 날,

 

일본에선

수뇌회담이 열렸다.

 

  《쑥대밭  돼버리면

     어때,

 

    차라리 할 수 있으면

    초토로 만들어버리렴아,

 

    본토에서

    반쯤 이민시키게,

 

    그래서, 그 동학당인가

    농민군인가 씨 말려버린 담에,

 

    흥정하는거야, 왕족과.

 

    요리상은 이미,

    받아놓은 요리상, 하하하.》

 

우리는 들었다

일본 어느 고장엔가, 지금도

잔디 입힌

코 무덤,

 

일찌기

식인종이었던

섬나라,

 

조선 사람의

대가리, 그 대가리가 왜

탐이 났을까,

 

칼로 베서

병아리새끼처럼

엮어 가던

임진년.

 

마늘접처럼

죽으로 엮여 가던

사람은 누구?

 

마늘접을

배에 싣고 가던 사람은

누구?

 

짐이 무거웠겠지

대가린 버리고

코만 베 갔다,

 

실로 꿰서

코를 가지고 가면

일본 천황 이하

대신들이

 

코날을 헤어서

조선사람 코 열 개에

쌀 두 가마

무명 두 필을 상급했다던가,

 

가죽은

더 비쌌다,

인피,

구두 만들려고?

더 큰 충성으로 보였겠지, 사람가죽

한 장에 비단 세 필,

 

끝나지 않았다

인간의 야만은 끝나지 않았다.

 

우리는 오늘

사람을, 총으로

쏘고 있지 않은가

 

아프리카에서,

아시아반도에서,

그리고

나뭇잎 싹트는

따스한 봄날

교수대에서.

 

아, 일찌기

인류 예지의 발상지였던

아시아,

평화와 꽃밭과 덕망의 땅이었던

아시아,

 

오늘

누가 와서

함부로 총질하고

있는가.

 

임진년,

조선사람의 종잘

말릴 순 없어, 칼 씻으며

그들은 돌아갔다.

 

민비.

여인이었다,

남과 북이

진창 되어도

자기 안방의 따뜻함

금은 노리개의 상자 속의 평화,

아들 남편의 영화만은 목숨 내놓고

확보하고 싶은.

 

대원군.

이조가 내 놓은

비뚤어진 사마귀,

양반은,

잘못 돋아난

물사마귀,

 

이미 대세 기운

파장에서 초조하게

우왕좌왕하는

더덕사마귀.

 

생의 마차를,

불성실하게 끌어온 사람들은

죽음 앞에서

발바닥 붙이지 못하고

당황한다,

 

임종 앞에서

당황하는 사람은

 

아닌 줄 알면서

 

안될 줄 알면서도

무엇인가,

 

아무꺼구

손에 잡히는대로

이 약

저 약, 목에 주워넣는다.

 

그래서

이조말의

더덕사마귀 떼들은

 

아닌 줄 알면서도

 

원세개 장군이여

일본군님이여, 하며

서학놈들이여, 동학놈들이여,

동으로, 서로

수선피웠으리라,

 

어찌 됐거나

일본군대는

1894년 9월

충청남도 서산에 상륙,

금강 방면으로 내려왔다.

 

때를 같이 하여

서울에서도

3천의 왕병과

5천의 일군이

남진.

 

전봉준은 호남 일대의

전 농민군에게

긴급 동원령을 내렸다,

 

    《조선의 전체

     동학농민군이여,

     어서 무장하고

     시월 5일 밤까지

     논산벌로 모여라.》

 

추수가 끝난

마을마다에선

그동안, 곡간 속

묻어 뒀던

 

창,

엽총,

죽창,

 

없는 사람은

쇠스랑,

호미

낫까지

닦아 들고 나섰다,

 

만삭이 된 아내의

귀밑머릴 만져주며,

병든 아버지의

머리맡에서,

무릎 나온 아들딸들의

코를 닦아주며,

 

그리고

정든 기둥나무에

눈 인사를 보내며

우리의 조상들은, 서리 내린 아침

집을 떠났다.

 

아침엔 태양

낮엔 까마귀

밤엔 시퍼런 하늘.

 

태백산,

바위틈서리에서

한 방울

두 방울 떨어지는

금강줄기의 원천처럼,

 

논산벌로 모이는 길은

산마을에서 들마을로 내려서며

강물처럼, 사람은

불었다.

 

홍수,

사로, 팔방에서

모여오는

창과 머리,

발과 증오의 홍수.

 

시월 십일

노성산에서

논산 이르는 벌판엔

20만의

농민이 집결.

 

낮이면

하늘을 가리는 흙먼지

밤이면

어둠을 수놓는

수천 개의 모닥불.

 

어디서 왔는가

바위 같은 주먹,

꿈틀거리는 심줄이여,

 

오,

무서운 감격이여,

반란이여,

 

오 무서운

힘이여

신이 나는 모임이여,

 

내일은 공주

모레면 수원

글피면 한양성

 

천추에

한 못다 풀

양반성의

점령이여

 

조국의 해방이여

백성의 해방이여

 

농민의,

노동하는 사람들의 하늘과 땅이여

 

오, 벌거벗고 싶은 감격이여

오, 위대한 반란이여,

 

꿀과 젖이 흐르는 땅,

꽃과 과일이 만발하는 강산이여,

 

눈빛과 웃음이

어우러지는 땅,

 

배불리 먹고 살 수 있는 나라여.

아버지와 아들이

사랑할 수 있는 세상이여.

 

농민군 총지휘 본부 막사

쉴 사위 없이

전령들이 들어오고 나갔다,

 

남접대장

전봉준 총수,

의형제로 그제 밤 아우가 된 북접대장

손병희 총수,

 

중앙에 높이 펄럭이는

깃발엔

 

    《왜적을 몰아내자》

 

    《썩은 왕실을 도려내자》

 

천안 세성산엔

북접 농민군 5천을

전위부대로 배치했다.

지휘자 이희인, 김복용,

 

홍성 방면엔

상륙한 일군의 남진을 저지코자

7천명을 배치했다

지휘자 박덕칠, 박인호, 진격했다,

 

만명을 손화중, 최경선에게 주어

전남 광주로 돌렸다,

왜군의 후방상륙에 대비.

 

김개남은

1만 5천의 직속부대를 이끌고

진잠고개 넘어 청주로 진격했다,

 

시월 21일, 무서리 내린 아침

세성산 유진했던 농민군 전초부대가

왜군 기관총소대의 기습으로 전멸됐다는 소식이

본부에 들어왔다.

 

주력부대는

삼로로 진격했다

 

계룡산 동쪽 기슭 돌아

대교쪽에서

공주감영 공격하는

손병희 부대 5만명,

 

정남에서

노성 효포 거쳐 북상하는

신하늬 부대 4만명,

 

7만명 이끈 전봉준은

노성산 서쪽 돌아

이인에서 우금티를 넘었다

 

산의 벽과

산의 벽이

마주 울고

 

역사와 노도가

산을 문질렀다

 

꽃도, 나무도,

돌도, 강물도,

북쪽 하늘 향해, 일제히

머릴 나풀거렸다,

 

감발과 감발

짚신과 짚신

꿰진 무릎과 무릎,

 

돌,

몽둥이,

삽,

호미,

쇠스랑,

괭이,

부엌칼,

부지깽이,

 

그렇다

정말,

눈 못보는 허리굽은 할머니들,

아들딸의 뒤를

따라, 부지깽이 들고

좇았다,

 

창,

심지총,

죽창,

 

살과 살,

뼈와 뼈,

 

눈동자와 눈동자,

이마와 이마,

가슴과 가슴,

쓸개와 쓸개,

 

미움과 미움,

분노,

 

고개 넘고

내 건느고

마을 지나

 

밑 없는

어둠을 뛰었다.

 

일어나자

조국의

아들딸들아,

 

일어나자,

반도의

중생들아,

 

목숨 살아 있는

동학교인이여, 모든 농삿군이여

 

일어나라,

조국의

모든 아들딸들이여,

 

손톱도 발톱도

돌도 산천도, 이 나라의 기름먹은

흙도 바람도

새도 벌레도 일어나라,

 

두렛군이여

조국이여

너를 부른다, 두렛군이여,

녹두알이여, 너를 부른다.

 

땅도 강물도

깃 털고 중천 높이 솟아라

너를 부른다

 

너의 피를 부른다

여문 뼈, 노랑수건 휘날리며 오라

농민군이여.

 

우리들은 이때 공주 싸움에서

있었던 몇 가지 기록을 가지고 있다.

 

23일 이른 아침

이인에서 곰나루 건너던

농민군이, 스즈끼소위가 인솔한

일군 기관총 부대의 반격을 통쾌하게

때려엎은 이야기,

 

지금의 공주 교육대학 뒤 봉황산 마루에 있던

관. 일 혼성부대가 농민군의 포위공격에

쫓기어 무기 버리고 성내로 도망간 이야기,

 

그러나 무슨 소용이랴,

역사도 울고

산천초목도 울었다.

 

공주 우금티,

황토흙 속 유독 아카시아가

많은 고개였어,

 

어느 여름

땀 흘리며 뻐스로 올라가는

이 고개는 매미소리뿐이었지,

 

그날 낯선 여학생이 나 보고

까닭없이 웃었지,

오빠였을까? 형무소에서 나오던

그 잘 생긴 사내.

 

그리고 어느핸가

폭격이 있었다, 황소가 쓰러져 있는 마을

고갯길 한가운데

탱크가 누워 있었지,

부러진 포신.

 

귀를 째는

제트기 폭음,

즐비하게 흩어진 외제

기관포 탄환

의 깍지,

 

그 우금티 고개에서

동학군은 악전고투했다,

상봉 능선에

일렬로 배치,

불을 뿜는

왜군 제5사단의

최신식 화력,

 

야전포,

기관총,

연발소총,

수류탄.

 

꽃이 지듯

밑 없는 어둠으로

수백명씩

만세를 부르며,

흰 옷자락 나부껴

수천명씩

차례차례

뛰었다.

 

민족의 제전,

반도의 산봉우리 높이

불타고 있는 저 모닥불 속에

던져라,

우리의 젊음.

 

없었노라

이 목숨 내맡길 자리.

얼마나 기다렸던가

이 성화,

 

젊음을 부르는

성화.

 

왔노라,

이제야 왔노라

거대한 천명.

 

이제야 보았노라,

우리들의 하늘.

 

발 밑에서 불타는,

우리의 하늘.

 

던져라

젊음.

던져라

창.

던져라,

증오.

던져라

반역.

 

영원의 강물이

우릴 손짓한다

 

오, 위대한

몸부림이여.

 

깊은 하늘,

용광로 불길 속에

사방, 팔방에서

무수히 던져지는

저 꽃다발.

 

지글거리는

역사의 밭이여.

 

꽃불 튀기는

피의 잔치여.

 

내가 왔노라,

이제야

내가 여기 왔노라.

 

뼈를 남기고,

승천하는

승리여.

 

내 여기 왔노라

이제야

처음, 내 여기 왔노라.

 

내 여기서

불타며 승리했노라.

살덩이를 여기

찢어 던지며

내 영혼은 여기서

승리했노라.

만세,

만세를 불렀노라.

 

노래했노라

우리의 형제들은.

 

다음날의

백화 요란한

하늘밭 위해,

우리의 목숨을

거름밭에 던졌노라

용감히 노래하며 던졌노라.

 

알맹이를 발라서,

던졌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