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2년
해월은 전국 교도에게
호소문을 보냈다,
11월 1일
매서운 북풍 속서
호남평야 삼례역
3천 군중이 모였다,
제1차 신원 시위운동
보리밭 속서
충청, 전라, 양 관찰사에게
호소문을 보냈다,
"동학을 허하여 주옵서,
지금 각지방에서는 군수로부터
서리 군교, 간사한 토호 양반에
이르기까지 아침저녁으로
우리 죄없는 농민들의 가산
탈취하며, 살상 구타 능욕을
일삼고 있으니,
이는 오직 정부가 우리 동학을
사학시(邪學視)하여 제 1 세 교주 수운선생을
참수한 데에 비롯되나니
억울하게 순교한 수운선생의
원을 이제라도 풀어주옵소서.
우리의 도가 척양척왜, 광제창생, 보국안민,
사인여천일진대 이 어찌 邪道가 되옵니까."
닷새만에
전라관찰사 이경직의
깃달린 편지를 받았다,
"동학은 왕실이 금하는 바라.
어리석은 농민들이여, 칼로 베이기 전에
어서 각자 집으로 돌아가 정학을
취하라.
앞으로 관리들에겐
푼전도 뜯어가지
못하게 이르겠노니."
동이나 서나 세리들의 입은
열두 개, 적당한 기회에 적당한 말을
적당히 지껄여놓고 잊어버린다.
3천의 군중은
보은, 동학 총본부를 거쳐
서울로 모였다.
광화문 앞 광장
3천의 군중이
바둑판처럼
땅을 짚고
엎디어 있었다.
1893년 2월 초순
제 2 차 농민 평화시위운동.
입에 물 한 모금 못 넘긴
사흘 낮과 밤
통곡과 기도로 담너머 기다려 봐
왕의 회답은 없었다.
마흔아홉 명이 추위와
허기와 분통으로 쓰러졌다.
그러는 사흘 동안에도
쉬지 않고
눈은 내리고 있었다.
금강변의 범바위 밑
꺽쇠네 초가 지붕 위에도
삼수갑산 양달진 골짝에도, 그리고
서울 장안 광화문 네거리
탄원시위 운동하는 동학농민들의
등 위에도,
쇠뭉치 같은 함박눈이
하늘 깊숙부터 수없이
비칠거리며 내려오고 있었다.
그날, 아테네 반도
아니면 지중해 한가운데
먹 같은 수면에도 눈은
내리고 있었을까.
모스코, 그렇지
제정과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
푸쉬킨
톨스토이
도스토에프스키,
인간정신사의 하늘에
황홀한 수를 놓던 거인들의
뜨락에도 눈은 오고 있었을까.
그리고
챠이코프스키, 그렇다
이날 그는 눈을 맞으며
페테르부르그 교외 백화나무 숲
오바 깃 세워 걷고 있었을까.
그날 하늘을 깨고
들려온 우주의 소리, <비창>
그건 지상의 표정이었을까,
그는 그해 죽었다.
시간은 쉬지 않고 흘러갔다.
그리고 짐승들의 염통도 쉬지 않고
꿈틀거리고 있었다.
북한산, 백운대에서
정릉으로 내려오는 능선길
성문 옆에선,
굶주리다 죽어가는 식구들
삶아먹이려고 쥐새끼 찾아나온
사람 하나가,
눈 쌓인 절벽 속을
굴러 떨어지고 있었다.
그날 밤,
수유리 골짝 먹는
멧돼지 두 마리가, 그
남루한 옷 속서
발을 찢고 있었지.
산은 푸르다,
말 없이 푸르기만 하다.
오늘도 일요일이면, 낯선 사람들과
수통의 물 나누며 오르는
보현봉,
반도에 눈이 내리던 그날에도
말없이 서울 장안을
굽어보고만 있었다.
광화문이 열렸다,
사흘동안 굳게 닫혔던
문이 열렸다.
군중들은 일제히 고개를 들었다.
문은 금새 닫혔다,
들어간 사람도, 나온 사람도 없었다,
그러면 그 사이
쥐새끼가 지나갔단 말인가, 아니야,
바람이었다, 거센 바람이
굳게 닫힌 광화문의 빗장을
부러뜨리고 밀어제켜버린 것이다.
그 문의 빗장은 이미
썩어 있었다.
모든 고개는 다시 더 제껴져
하늘을 봤다.
그 무수의 눈동자들은 다시 내려와
서로의 눈동자를 봤다,
눈동자.
주림과 추위와 분노에 지친
사람들의 눈동자,
단식하는 사람들의
눈동자는 맑다,
서로 마주쳐 천상에서 불타는
두 쌍, 천 쌍, 억만 쌍의
맑은 눈동자.
바둑판의 중앙에서
장대 같은 사나이가 일어섰다.
그의 어깨에도
괴나리봇짐이 메어져 있었다,
군중의 등불 같은 눈동자들이
집중했다, 장두 박광호,
"우리는 사흘을 기다렸다,
많은 동지들이 쓰러졌다,
죽음은 우리앞에 있다,
회답이 없다.
우린 파리새끼만 못한 목숨인가?
백성의 강산이다, 우리 조선은
광화문은, 왜 우리 어질고
착한 백성의 발길을 막는가."
군중은 일어섰다.
주먹을 싸잡으며 하늘을
우러렀다,
벌판에서 솟구치는 무수한 미루나무 숲.
박광호는
두 팔을 활짝 벌여
손짓했다.
"앉아주시오. 그리고
열 사람만 나와 주시오
역적이 되고 싶은,
아직 기운이 남아 있는
열 사람만 나와주시오,
문을 흔듭시다,
주먹으로 두드려봅시다."
농민들은 다 일어섰다.
열 사람이 뽑혔다,
군중과 광화문과의 사이엔
공간이 있었다,
그 공간 속을, 열한 사람의
대표는 허기진 기색도 없이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었다.
벽은 죽음이었다.
문은 죽음이었다,
죽음의 나락을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가슴뿐이었다.
불덩이 같은 가슴,
가슴은 터지리라,
문이다,
고리다,
열하나의 가슴이
최후를 밀듯
죽음을 밀었다.
열하나의 육신이 미끌어
쓰러지면서 스물두 개의
주먹으로 문을 두드렸다.
이미 끝난 일이다,
노란 천지를 상대로, 끝없이
두드렸다, 이미 끝난 일이다,
머리로 받았다,
이미 끝난 일이다.
싱겁다.
허사였다, 기다렸던
벌도 없었다
그 길로 교도들은
보은 속리산을 향했다.
이왕실은 치마꼬리가
삭아서 흘러내리고 있었다,
겨드랑 밑으로 다시
추켜올리면 될 것 같았지만
추키려 해도 추키려 해도
붙어 있을 까닭이 없었다,
아무릴 단도 깃도 허리끈도
다 삭아서, 빌빌 하는걸,
늙고 메마르고 멍들고
삭정이만 남은 앙상한
허리 아래가 드러났다.
이제 엉덩뼈가 그 못생긴
한쪽 엉덩짝이 나타나리라.
해월이 대도소에 나타나는
3월 열하루, 보은 땅에는
십여만 명의 농민이 모여들었다.
제 3 차 무저항 농민 시위운동,
밥짓는 연기,
막사짓는 소리,
기도하는 소리,
발과 발,
무엇을 보았는가,
이조 5백 년, 억울하게만
살아온 농민들이
처음으로 자기 주먹을 보았는가, 이제야
자기의 얼굴
자기의 가슴을 보았는가.
어느새, 누가
달았는가, 여기저기
깃발이 나부꼈다,
"양민을 학살하지 말라"
"물리치자 폭정
구제하자 백성"
"몰아내자 왜놈
몰아내자 양놈
몰아내자 모든 외세"
"백성은 한울님이니라"
"일어나라 백성들이여
물리치자 관의 횡포"
급보에 접한, 조정
양반배들은
선유사 어윤중,
보은군수 이규백,
충청병사 홍계훈,
그리고 그의 휘하
일천 명의 군대를
보은땅 보내
해산하라고 위협,
지도자들과
사흘을 숙의한 해월은
사월 초닷새
자진 해산령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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