쑥 냄새 풍기는,
해월 묵고 있는
초가집엔 하루에도
수십명씩,
멀린 황해도, 평안도에서까지
농삿군 敎徒들이
괴나리봇짐 얽메고
드나들었다.
비록 굶주리고
헐벗은 행색들일망정,
눈동자마다에선 광채가 빛나고,
멀리서 온 동지들을 만나
서로 주먹 싸 쥐며, 눈물로
반가와하고,
왕가의 기둥뿌리가 썩었음을,
세상은 말세임을,
양반이 각지에서 마지막 발악하고 있음을,
서울장안, 부산항군, 이미
왜국상인, 왜국간판에게 아랫배까지 내주기 시작했음을
개탄했다.
한 달을 묵으면서
각지의 농민 지도자들과 사귄
전봉준은 자기가
외롭지 않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합천 해인사
경주 토함산, 마산, 진주 촉석루
여수, 순천, 화엄사를 거쳐
고향에 돌아왔다.
고향에 돌아온
봉준은 그해 겨울
뜻 아니, 아끼던 아내의
죽음을 만났다.
동네 사람들 사이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론,
봉준은 아내의 죽음을 두고
몇 날 며칠
식음을 전폐했다.
황토현 남쪽
양지바른 기슭,
가루 고운 흙 속에
자기 손으로 묻고
잔디를 입혔다.
밟으면서 울었다.
봄이면 꽃
여름이면 하늘
가을이면 귀뚜라미
겨울이면 추위
전봉준은 자주
아들의 손을 이끌고
아내의 무덤 앞 찾아와
말 없이
몇 시간씩
서 있다 가곤 했다.
그림이었으리라,
서해에 노을이 물든 석양,
그리고 달밤
동네 사람들은 언덕 위
어른과 소년
두 사람의 그림잘
자주 보았다.
그후, 봉준은
가끔, 두루마기 빨아 입고
서울을 다녀왔다.
밤길,
새벽길, 소맷자락으로 땀 씻으며
그의 집 드나드는
사람의 수도 많아갔다.
남원 사람 김개남,
그는 이미 열세 살때
세미(稅米) 받으러 와
늙은 아버지께 행패하는
관속 두 사람
한 아름에 몰아
수채구멍 쑤셔박은 일로
곤장 백개 맞은, 그리고서도 웃으며 일어났다는
8척 장사.
얼굴이 흰, 칠보사람
손화중, 그는 임진왜란 때
전주성의 이조실록
내장산으로 묘향산으로 끌고 다니며
보전케 했던
손홍록장군의 후손,
가녀린 미남으로
일찍부터 해월의 감화 받은
그러나 뛰어난 전략가였다.
그밖에
많은 호남지방
동학접주들이 드나들기 시작했다.
다음 해 여름
봉준은 두 벌 김매놓고
서울을 다녀왔다
서소문밖, 객주집에
두 달을 묵으면서
인심,
세정을 살폈다.
같은 방 묵게 된
충청도 사람
신하늬와 의형제를 맺었다.
전봉준과 신하늬는, 마치
하늘이 마련해놓은
연분이기라도 한 것처럼
만나자 첫눈에
배포와 뜻이, 톱니바퀴처럼
맞아 들어갔다.
두 살 위인 전봉준이 형
하늬가 아우,
그들은 해만 뜨면
거리 구경,
해만 지면 돌아와
등잔불 아래 엎뎌
세상얘기로
밤을 새웠다.
남별궁,
지금 반도호텔이 서 있는 자리엔
그때 남별궁이 있었다.
외국에서 오는 사신들의 숙소,
이미
남별궁 근처, 일본인들의
전횡 무대,
언제 보아도
게다 신은
닷도상 옆에
수십 명의 갓쓴
벼슬아치
장사치들이 올망졸망
모여 서서
손을 비비는
광경.
자본,
대포,
를 앞세운
명치의 진출 앞에
벌써 냄새
잘 맡는
事大가빌붙기 시작한걸까,
청나라에 주었던
남한산성을
이젠
사무라이에게 주고 싶어
저리 간사떨고 있는걸까,
예나 내일이나
식민지하의
관리들이 배우는건
오직 하나
아첨과 비겁,
1882년
임오군란이 일어나자
왕실에서는 조심조심
청에 원병을 청했던 것.
청국은 원세개를 서울에 주둔시켰다,
일천 명의 군대와 함께.
금은,
아편,
비단,
그리고 상전국으로서의
권력을 함께 가지고 온
그들의 주변에는
정치 장삿군
여자,
소매 상인,
주둔군은
한 가지 한 가지
사기 시작했다,
곶감, 대추, 명태, 돼지,
여자, 집, 명동 일대의 대지,
그리고 비단에 약한
조선사람들의
마음까지를,
그래서 명동
금싸래기 땅은
지금까지도 그의
아들의 소유,
그런데 또 일본이 왔다.
이조말의
반도는 흡사
접시 위 올라앉은
벌거벗은 생선,
멀리는 불란서, 미국, 영국,
러시아,
가까이는 중국과 일본,
마치 그들은
내기나 하려는 듯,
네가 두 발짝
나는 세 발짝
나는 세 발짝
너는 여섯 발짝
접시 위 생선을 두고
한 발 한 발
접근해오고 있었다.
청국의 왕실과
이왕가의 왕실 사이엔
주종의 관계 맺었다지만
양쪽 다
왕실의 지붕은 이미
무너지며 있었고
그래서
무너지는 옷을 벗고
실권자인 군부가
주인이 되어 반도를
호령하려 한 것,
2천만의 농민이
제주에서 두만까지 사이
뜸물처럼 엎디어
땅을 갈고,
2천만의 농민이
엎디어, 이루어놓은
육체의
산더미 위
왕권은 대초롱을
깊이, 깊이 박고
김대감,
박정승,
아전,
이속들과
힘을 모아
2천만 농민의
피를
빨아먹고 있었다.
이성계가 파놓은 우물,
그리고 대대로 전승되는
그 살기름의 우물터는,
대대로 모든 지식분자들의
아귀다툼의 마지막 겨냥
출세의 최종 목표,
흙냄새 섞인,
기름이 스며나오는
우물의 흡구에
누구든 한 번
코를 박아본 사람이면
간도
눈도 미쳐서
세상없는 놈이 와,
뒷덜미 도끼로 찍어도,
목이 잘리우고도
혼만은 살아서
흡구 근처 떠나지 못하고
추억이 되어 빙빙
남아 돈다.
고시 공부 한다는 건
출세하기 위한 것,
출세한다는 건,
피 빨아먹는 자리,
놀고 먹는 자리,
백성의 피기름 솟는
흡구 자리 하나
차지한다는 것,
피라밋처럼
정상을 향해
벼슬길로
기어오른다,
형제의 등을 밟고
친구의 목을 부러뜨리고
제 자신의 낯짝도
쥐어뜯어 가며
벼슬 높은
정상으로
정상으로,
여기 저기
나 있는달 표면의
분화구 자죽 같은
흡구 곁으로
기어올랐다.
오늘,
얼마나 달라졌는가.
변한 것은 무엇인가
서대문 안팎, 머리 조아리며
늘어섰던 한옥 대신
그 자리 헐리고 지금은
십이층 이십층의 빌딩
서 있다는 것,
진고개에 청계천, 이쪽 저쪽
우왕좌왕 하고 있는 사람들의
옷맵시가, 갓에서 넥타이로
변모했다는 것밖에,
무엇이 달라졌는가,
지금도 우물터
피기름 샘솟는
중앙도시는 살찌고
농촌은 누우렇게 시들어가고 있다
우리들의
움직이는 발
한 발자국
움직이는 손
한 팔짓이
누구의 등을 안 파고
견딜 수 있단 말인가.
잡초만 무성하는
악의 밭,유린과 착취가
무한대로 자유로운
버려진 땅,
불성실한 시대에 살면서
우리들은,
비지 먹은 돼지처럼
눈은 반쯤 감고, 오늘을
맹물 속에서 떠 산다.
도둑질
약탈, 정권만능
노동착취,
부정이 분수없이 자유로운
버려진 시대
반도의
등을 덮은 철조망
논밭 위 심어놓은 타국의 기지.
그걸 보고도
우리들은, 꿀먹은 벙어리
눈은 반쯤 감고, 월급의
행복에 젖어
하루를
산다.
그날
하늬와 봉준이 본
이왕가의 내면도
그러한 것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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