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수집

신동엽 서사시 금강 제 6 장

서해안 나그네 2024. 9. 27. 23:54

 

우리들에게도

생활의  시대는  있었다.

 

백제의  달밤이  지나갔다,

고구려의  치맛자락이  지나갔다,

 

왕은,

백성들의  가슴에  단

꽃.

 

군대는,

백성의  고용한

문지기.

 

앞마을  뒷마을은

한  식구,

두레로  노동을  교환하고

쌀과  떡,  무명과  꽃밭

아침  저녁  나누었다.

 

가을이면  영고,  무천,

겨울이면  씨름,  윷놀이,

오,  지금도  살아  있는  그  흥겨운

농악이여.

 

시집가고  싶을  때

들국화  꽂고  꽃가마,

장가가고  싶을  때

정히  쓴  이슬마당에서

맨발로  아가씨를  맞았다.

 

아들을  낳으면

온  마을의  경사

딸을  낳으면

이웃마을까지의  기쁨,

 

서로,  자리를  지켜  피어나는

꽃밭처럼,

햇빛과  바람  양껏  마시고

고실고실한  쌀밥처럼

마을들은  자라났다.

 

지주도  없었고

관리도,  은행주도,

특권층도  없었었다.

 

반도는,

평등한  노동과  평등한  분배,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

그  위에  백성들의

축제가  자라났다.

 

늙으면  마을사람들에  싸여

웃으며  눈감고

양지바른  뒷동산에  누워선,  후손들에게

이야기를  남겼다.

 

반도는

평화한  두레와  평등한  분배의

무정부  마을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

그  위에  청춘들의

축제가  자라났다.

우리들에게도  생활의  시대는  있었다.

 

언제부터였을까,

살림을  장식하기  위해  백성들  가슴에

달았던  꽃이,  백성들  머리  위  기어올라와,

쇠항아리처럼  커져서  백성  덮누르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산짐승,  유한(有閑)약탈자

쫓기  위해  백성들  문밖  세워뒀던  문지기들이,

안방  기어들어와  상전노릇  하기

시작한  것은,

 

이조  5백년의

왕족,

그건  중앙에  도사리고  있는

큰  마리낙지.

그  큰  마리낙지  주위에

수십  수백의  새끼낙지들이  꾸물거리고  있었다

정승배,  대감마님,  양반나리,  또  무엇

 

지방에  오면  말거머리들이

요소  요소에  웅거하고  있었다

관찰사,  현감,  병사,  牧使,

 

마을로,  장으로

꾸물거리고  다니는  건  빈대,

봉세관,  균전사,  전운사,  아전,  이속,  관세위원

그들도  벼슬은  벼슬이었다.

 

벼슬자리란  공으로  들어오지

않는  법,

밑천을  들였으면

밑천을  뽑아야,

그리고  지금이나

예나,  부지런히  상납해야

모가지가  안전한  법,

그래서,  큰  마리낙지  주위엔

일흔  마리의  새끼낙지가,

 

일흔  마리의  새끼낙지  산하엔

칠백  마리의  말거머리가,

 

칠백  마리의  말거머리  휘하엔

만  마리의  빈대  새끼들이.

아래로부터,  옆으로부터,

이를  드러내놓고  농민  피를  빨아

 

열심히,  상부로  상부로

올려바쳤다.

큰  마리낙지는

그럼  혼자서  살쪘나?

 

오늘,  우리들  책  끼고

출근  버스  기다리는  독립문  근처

上典國  使臣의  숙소  모화관이  있었다.

지금으로  말하면

무슨  호텔,  아니면  무슨  대사관,

 

해마다  왕실은

3십3만  냥의  금은보활,

청나라  황제에  상납.

그리고  3십7만  냥의  돈  들여

상전국  사신,  술과  고기와  계집으로  접대했다.

 

           <혹,  노예들에  의해

             우리  왕실  밀려나게  됐을  때

             즉각  귀국  군대로

             도와주옵소서.>

 

신라왕실이

백제,  고구려  칠  때

당나라  군사를  모셔왔지.

 

옛날  사람  욕할건  없다.

 

우리들은  끄떡하면  외세를

자랑처럼  모시고  들어오지.

8.15  후,  우리의  땅은

디딜  곳  하나  없이

지렁이  문자로  가득하다.

모화관에서  개성  사이의  행길에  끌려나와

청나라  깃발  흔들던  눈먼  조상들처럼,

 

오늘은  또,  화창한  코스모스  길

아스팔트가에  몰려나와,

불쌍한  장님들은,  대중도  없이  서양깃발만

흔들어댄다.

 

허나

다녀가는  높은  오만들이여

오해  마시라,

그대들이  만져본  건  역사의  껍데기,

 

알맹이는  여기

언제나  말없이  흐르는  금강처럼

도시와  농촌  깊숙한  그늘에서

우리의  노래  우리끼리  부르며

누워  있었니라.

 

누구였던가,  무엇에  당선만  되면

다음날  당장  미국에  건너가

더  많은  동냥,  얻어올  수  있다고  장담했던

정치  거지는,

 

내  진실로  묻노니  그대들이  구걸해  온

동냥돈이,  단  한번만이라도  농민들의

밥사발에,  쌀밥으로  담겨져본  적이  있었는가.

 

후진국의  땅은  포도주,

포도주는  썩어야  맛이  날까.

 

빠다와  째즈와  딸라와

양키이즘으로,  우리의  땅은

썩혀졌을까.

 

원조물자,  딸라는  酵母,

발효한  항아리에서  포도주  빼가기에

바쁜  넥타이  맨  장삿군의  얼굴은  어떻게  생겼을까.

 

방마다에서  한국의  토산물

흥정되고,  자본의  앞잡이들은

한국지도  위  등불  밝혀놓고

분주히  주판알  튀긴다.

 

자본이  벨을  누르면

중앙청  정승  대감들이

맨발로  달려와

머리  조아리고.

다음날  그들

銀行室  벼슬아치들은

호남평야  원주민의  쌀값을

대폭  인하.

 

자본실이  가지고  들어온

설탕값을  스물세  곱으로  올린다.

 

딸라의  냄새란  좋은  것,

미나리처럼  쭉쭉  뻗은

코리아산  여대생들

라이프지  끼고  그  근처  와

온종일  빙빙  돌지.

 

눈먼

백성들이여,

가도  가도

끝이  없을

눈먼  행렬이여,

 

오늘의  하늘  아래

반도에  도사리고  있는

큰  마리낙지,  작은  마리낙지,

새끼  거머리들이여.

 

눈도  코도  없이

벌거벗고  대낮  거리에  나온

화냥년들과  놀아나는

부잣나라  지키는  문지기들이여.

 

갈라진  조국.

강요된  분단선.

우리끼리  익고  싶은  밥에

누군가  쇠가루를  뿌려놓은  것  같구나.

너와  나를  반목케  하고

개별적으로  뜯어가기  위해

누군가가  우리의  세상에

쇠가루  뿌려놓은  것  같구나.

 

4월달,  우리들,  밥은

익었었는데

누군가가  쇠가루  뿌려놓은  것  같구나.

 

戀人이여,  너와  나의  쌀밥에

누군가  쇳가루  뿌려놓은  것  같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