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남들한테 신세지는 나이가 되었다.
언제부턴가 아침에 출근하면 조차장이나 김대리가 타다주는 커피를 아무 거리낌 없이
받아 마시는 염치없는 노인이 되었다.
마음속으로는 늘 고맙고 감사하지만 제대로 표현한 적은 없는 것 같다.
내가 사양하지 않는 핑계를 굳이 대자면, 의회 전문위원 시절 아침마다 커피를
타다주는 동료 여직원에게 내가 가져다 마실테니 그러지 말라고 했다가
감격스럽고 가슴 뜨끔한 거절을 당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아침에 커피 한 잔 가져다 주는 즐거움까지 빼앗으려 하느냐는 것이었다.
그 후로 이 말을 핑계로 뻔뻔한 사람이 되었다.
지금도 내가 아침마다 마시는 커피에는 나이 많은 직장 상사, 인생 선배에 대한
존경과 사랑이 담겨 있는 예사 커피와는 전혀 다른 특별함이 있을거라 믿고 있다.
늘 고마움을 느낀다.
올 해는 생일 이벤트를 두번씩이나 받았다.
팀원들이 음력으로 세는 걸 모르고 양력 생일 날 멋진 이벤트를 만들어 주었다.
기왕 준비를 하였으니 물릴 수도 없고 본의 아니게 두 번 생일 잔치를 하게 된 것이다.
생일을 기억해 준 직원들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한 달 뒤 진짜 생일이 돌아왔다.
이제는 예쁜 며느리까지 있어 그를 보는 것만도 즐거운데 센스 있게 케익이며
선물까지 챙겨주니 행복하기 이를 데 없다.
사전에 뭘 갖고 싶으시냐고 묻길래 너희들이 곧 선물이니 그냥 내려와서 식사나 하자고
했는데 어느 새 내 속을 훔쳐본 듯 하다. 아이들이 곧 선물인 것도 갤럭시 워치를 갖고 싶었던 것도
모두 진심이었다.
식구 한 명이 늘었을 뿐인데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딸 아이의 호주머니도 가벼워졌다.
아빠 생일이라고 내려와 100만원이 넘는 양복을 사 주었다.
지 동생과 함께 살때에는 함께 선물 하나를 준비하면 됐었는데 이제 분가를 하고나니
따로따로 준비를 하기로 한 모양이다.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미안할 따름이다.
아이들 자라오는 동안 뒷바라지 한 번 제대로 못해줬는데 ---
나이 60 중반에 벌써 이사람 저사람한테 폐를 끼치는 신세가 되었으니
인덕이 많은 건지 염치가 없는 건지 결론을 못 내리겠다.
그저 모든 사람들한테 미안하고 고마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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