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우리곁을 떠난지 벌써 1년이 지났다.
이름만 들어도 언제나 가슴 먹먹한 우리들의 영원한 동지.
사진 속 그는 언제나처럼 환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추도사를 하라는데 무슨 말을 하여야 할 지--
그냥 편지 한 통 바람에 띄워 보냈다.
복균동지!
우리가 헤어진지 벌써 일년이란 세월이 흘렀군.
그 동안 근심 걱정 없는 새 세상에서 편히 잘 지내고 있겠지?
행여 두고 온 자들 걱정에 한 줄기 바람이 되어 우리들 곁을 맴돌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네.
평소 정 많던 동지였기에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드네.
동지가 떠난 지 일주기가 되는 오늘, 나보고 추도사를 하라는데
그 많은 동지와의 추억들을, 그리고 늘 무겁게 남아 있는 가슴 속 미안함을
내 어찌 말로 다 풀어낼 수가 있겠는가.
그래서 중언부언 편지 한 장 보내니 들어 보게나.
우리가 직장협의회를 처음 시작하고 나서 무언가 하나씩 이루어 나갈 때 마다
환하게 웃던 동지의 모습이 눈에 선하네.
지금 생각하면 아주 작은 일들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그 땐
성취감에 가슴 뿌듯했었잖아.
언제나 잔잔한 미소에 조용한 대화였지만 그 누구 보다도 논리 정연하고
단호했던 모습, 고통받는 노동자가 있는 곳이라면 그 어디든
가방 하나 달랑 매고 홀연히 떠나던 뒷모습,
불의에 대항해서 행동할 때면 강철같이 강한 투쟁력으로 앞서 나가던
동지의 그 모습이 생생하게 떠오르는군.
비단길 마다하고 살신성인의 정신으로 자신을 불태우면서 끝내는
해고자라는 불명예를 안았음에도 전혀 개의치 않았고,
병마에 시달리며 앞으로 다가 올 마지막 시간을 담담하게 말하던
동지의 의연함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다네.
복균동지!
동지는 자긍심이 넘치거나 스스로를 대단하게 여기지 않았으며,
언제나 겸손하고 대신 힘 없는 사람들에겐 연민의 정을 보내던
섬세하고 멋진 친구였어.
보게나! 그런 동지의 모습이 그리워 오늘도 수많은 동지들이 찾아 왔다네.
동지가 떠난 지 어언 일년.
그러나 아직도 세상은 변한 게 없네.
열악한 노동환경 속에서 힘 없는 노동자들이 오늘도 속절없이 스러져가고 있는데도
책임지는 사람 하나 없고, 진보된 안전대책이나 사회보장책도 나오질 않고 있다네.
동지가 바라던 푸르른 세상은 언제나 이루어 질지 모르겠어.
"산에 오르는데 별다른 묘수는 없다. 그냥 끊임없이 오르고 오르다 보면
어느 새 멀리만 있던 그 곳이 내 앞에 다가와 있으리라"던 동지의 말처럼
이제 남아있는 우리들이 걸어가야 할 길이겠지.
복균동지!
이제 그만 접으려 하네.
동지가 머물고 있는 이곳 삽티의 푸르른 호수처럼 그곳에서도 늘 푸르른
삶을 살아가길 바라네.
우리 모두는 동지가 그랬던 것 처럼 용기 있고, 분노하고, 저항하고, 연민을 느끼는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노력할게.
잘 있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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