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임복균 동지의 영전에 올립니다

서해안 나그네 2020. 6. 3. 15:06

복균동지!

 

우리 이제는 정말로 헤어져야 하는 시간이 되었나봐.

만남은 이별을 전제로 한다지만 이토록 빨리 가슴 아픈 작별을 하게 될 줄

어찌 알아겠나.

사랑하는 가족과 수많은 동지들이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돌아오기를 그토록 기다렸는데

이렇게 무심히 떠나다니 가슴이 미어지는것만 같네.

 

이름으로만 익히 알고있었던 임동지가 다른 동지들과 함께

초대 직장협의회 위원장직을 맏아 달라고 찾아왔을 때 이렇게 온순하게 생긴 사람이

어떻게 그런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을까 의아  했었지.

그 후 노동조합 활동을 함께 해 오면서 불의와는 결코 타협하지 않는 외유내강의

모습을 보면서 동지는 역시 우리 시대의 선각자라 생각했었지.

 

노동운동의 '노'자도 모르던 나에게 공무원도 노동자라는 사실을 알게 해 준것도

동지였고, 연대 투쟁의 중요성도, 공직자로서 어떤 가치를 가지고 살아야 하는지도

동지를 통해서 더욱 깨닫게 되었지.

지부에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마다 현명하고 합리적인 판단으로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어서

늘 고마웠었네.

반면에 나는 동지에게 연약한 모습만 보여준 것 같아서 당시 얼마나 안타까워했을까 생각하니

더욱 가슴이 시려오는군.

 

차가운 구치소에서, 구사대와 경찰의 무력 앞에서, 그리고 17여 년 간의 해직생활에도

조금도 굴하지 않고, 핍박 받는 노동자 서민들이 있는 곳이라면 배낭 하나 걸쳐매고

홀연히 떠나던 동지야말로 노동운동가중의 운동가였음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 할 것이네.

오롯이 타인을 위해 자신을 불태웠던 동지의 투쟁정신은 아마도 남은 우리들에게

큰 교훈으로 새겨질거야.

 

동지가   피땀 흘려 이룩해 놓은 터전 위에서 평온한 삶을 살아온 사람으로서

이제는 동지에게 영원히 빚진 자가 되어 버렸군.

그러잖아도 동지에겐 빚진게 많은데 말이야.

 

돌이켜보면 동지가 겪었던 그 고난의 길은 마땅히 내가 가야할 몫이었는데 동지에게 너무 무거운

짐을 지게 한 것이 동지를 떠나보내게 된 이유가 된 것 같아서 더욱 마음이 무겁네.

 

복균동지!

우리 모두 퇴직하고 나이 들어서 지난날 이야기 하며 술 한 잔 기울이자고 모임도 만들었잖아.

그 때 가서 허심탄회하게 많은 얘기 나누고 싶었는데 무심한 하늘은 왜 이렇게 우리를

갈라 놓는 것인지, 동지의 빈 자리가 크게만 느껴질 것 같아 걱정이네.

 

임동지!

우리 이제 더 이상 슬퍼하지 마세.

거친 길 꿋꿋하게 헤쳐 나가던 그 모습 그대로 새로 떠나는 먼 길도 의연한 모습으로

가리라 믿어.

 

동지가 이루고자 했던 세상, 그리고 회복되지 못한 명예는 남은 동지들에게 맡기고

편안한 마음으로 떠나시게, 동지가 말했던 대로 한줄기 바람이 되어.

 

못다한 수많은 추억담은 먼 훗날 슬픔도 분노도 모순도 없는 그 곳에서 다시 만나 이야기 하세.

 

동지여!

부디 안녕히 잘 가시게나.

 

 

 

 

어제는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의 산 증인이자 열혈투사 임복균 동지의 영결식이 있었다.

일년 전쯤 암진단을 받고 투병 생활을 해 오다가 5월 31일 오후 3시 10분 경 결국

눈을 감고 말았다.

5월 5일 고향집에 있을 때 찾아가  보았고, 약 1주 전쯤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 해 있는

모습을 본 것이 그의 생전에 본 마지막 모습이었다.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그의 몰골을 보면서 우리는 눈물로 쓰린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었다.

영안실에서 마지막 만져본 그의 얼굴은 차갑게 식어 있었다. 그토록 온유하고 따스하던 사람이었는데--

2004년 공무원 총파업 당시 이해찬 국무총리실을 점거한 일을 연유로 그 해 파면되어 아직까지도

명예회복을 하지 못했다.

그는 자신보다는 항상 남을 위해 희생하는 사람이었다. 공무원 조직의 일뿐만 아니라

쌍용자동차 분규 등 탄압받는 노동자가 있는 곳이면 스스로 달려가 함께 해 온 진정한 노동가였다.

영결식은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세종충남본부장으로 거행하였는데 전국에서 많은 동지들이 찾아와

그의 가는 길을 지켜보았다. 너무 짧게 살다 가는 게 못내 슬프긴 하지만 그래도 마지막 가는 길은

외롭지않게 보내준 것 같아서 조금이나마 마음이 놓인다.

세종충남본부와 우리 지부 동지들의 수고가 많았다.

 

초대본부장으로 복균동지와 함께 노동조합 활동을 한 인연으로 안장식 추도사를 부탁받고 차일피일

미루어 오다가

갑자기 위급해졌다는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그에게 마지막 서툰 편지를 썼다.

눈물이 나서 제대로 읽을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