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7월 4일
권회장님의 주선으로 여성행복지원 모니터단 40여 명과 함께
우리보다 앞서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여주 일원을 돌아보는
하루 일정의 답사를 다녀왔다.
때마침 오랜 가뭄끝에 적게나마 비가 내려 그래도 홀가분한 마음으로
다녀 올 수 있었다.
모니터단과의 하루를 담아 보았다.
이번 답사에 함께 지원 나오신 부여군 문화관광 해설사 김선생님의 설명을 듣고있는 단원들
역사문화관 뜨락에 세워진 한글 모양의 조형물
버스에서 내려 매표소도 채 미치지 못했을때 부터 땀을 흘리기 시작하여
마치 비에 젖은 새앙쥐 모양이 되었다.
바람 한점 없는 한낮의 폭염이 살인적이다.
훈민문을 들어서면 좌측에 바로 연못이 있는데 먹이를 먹으려는 잉어들이 징그러울 정도다.
먹이 자동판매기가 있어서 500원이면 잉어에게 인심 한 번 쓸 수 있다.
오리새끼가 귀엽게 떠다니고 있다.
커다란 잉어 주둥이를 생각하니 요녀석들은 안전할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가던 날이 장날이라고 여기저기 공사가 한창이다.
현지 해설사로부터 설명을 듣고있는 모습.
모두들 더위에 지쳐서 집중이 잘 안되는 모습이었다.
영릉은 조선 제4대 세종과 왕비 소헌왕후 심씨의 능으로 사적 제195호이다.
당초 영릉은 1446년(세종 28) 소헌왕후가 죽자 광주 서강에 쌍실의 능을 만들고
그 우실은 왕의 수릉(壽陵)으로 삼았다가 1450년(문종 즉위년) 세종이 죽자 합장 하였다.
이 능제는 <국조오례의> 치장조(治葬條)에 따라 만든 것으로 조선 전기
묘제의 기본이 되었다.
세조 이후 영릉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능을 옮기자는 주장이 있었으나, 서거정의 반대로
옮기지 못하다가 1469년(예종 1)에 다시 옮기자는 의논에 따라 여주로 옮겼다.
아침 출발할 때만 해도 비가 올 것 같던 날씨가 여주에 도착하니 언제 그랬느냐는 듯 폭염이
쏟아졌다. 영릉답사에 지칠대로 지친 몸을 이끌고 두번째 코스인 신륵사로 향했다.
신륵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교구 본사인 용주사의 말사이다.
신라 진평왕 때 원효가 창건하였다고 하나 정확한 것은 알 수 없다.
절 이름을 '신륵'이라고 한 데는 미륵 또는 왕사 나옹이 신기한 굴레로 용마를 막았다는
전설에 의한 것이라는 설이 있다.
그리고 고려 고종 때 건너편 마을에 나타난 용마가 걷잡을 수 없이 사나웠으므로
사람들이 잡을 수 없었는데, 이 때 인당대사가 고삐를 잡으니 말이 순해졌으므로
신력으로 제압하였다고 하여 절이름을 신륵사라 하였다는 설이 있다.
또한 이 절은 고려 때부터 벽절이라고도 불렸다.
이는 경내의 東臺위에 다층전탑이 있는데, 이 탑 전체를 벽돌로 쌓아 올린 데서
유래한 것이다.
신륵사다층전탑(보물 제226호)
높이 약 9.4m. 현존 유일의 고려시대 전탑이다.
한무리의 관광객이 빠져 나가 이때다 싶었는데 갑자기 한 아가씨가 전화를
받으러 오더니만 좀처럼 비켜주질 않았다.
할 수 없이 그냥 담을 수 밖에---
여주 신륵사 대장각기비(보물 230호)
이제 오늘의 마지막 코스인 명성황후생가로 향한다.
우선 기념관부터--
현지해설사이신 황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고있는 단원들.
일본인들에 의해 왜곡된 역사적 사실들을 들을때는 모두들 숙연한 모습이었다.
인상도 좋으신데다 말씀도 잘 하셔서 더욱 공감이 갔다.
이런 일본인들도 있다는 사실이 그나마 다행이다.
민비의 어린시절
사진설명은 답사교재에서 인용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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