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산 태봉산성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368호)
『이 산성은 해발 90m 정도의 태봉산 7부~8부 능선에 축조된 토축산성으로
둘레는 430m정도이다. 그러나 최근 시민체육공원을 조성하는 과정에서 7부 능선에는
너른 평지를 조성하기 위한 일환으로 경사면을 깊고 넓게 잘라 너비 20~30m 정도가 평탄화된
상태이며 산 정상부까지의 도로개설로 인하여 원형을 거의 잃은 상태이다.
다만 동벽과 남벽의 일부에서 토루상으로 흔적이 나타나고 있으나 통과선만이 겨우
확인될 정도이다.
이 산성의 경사면과 정상부쪽에서 삼한시대의 흑갈색계 무문토기편과 적갈색 연질토기편
동체부가 적지 않게 산견되고 있고, 넓게 분포된 경질토기계의 백제시대 개배 뚜껑과 통일신라시대의
토기호편 등이 확인되고 있다. 또한,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의 유물까지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어 이 지역이 대단히 중요한 위치를 점하여 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한편 기와는 수습된 것 중 통일신라시대의 것이 가장 시대가 올라가는 것으로 드러났으나
실제 토기 등의 출토상태를 보면 시대가 올라가는 백제시대의 기와 유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하겠다. 산 허리 부분에는 돌쩌귀 1기가 원형을 유지한 상태로 남아 있다.』
태봉산성을 오르다보면 그동안 이곳을 가꿔온 분들의 정성을 알 수 있는 비가 세워져 있다.
그러나 산성의 원형을 보존하면서 개발했으면 더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홍산119안전센터쪽에서 바라본 태봉산성.
벚꽃이 절정을 이룬지 한 이틀쯤 지난 모습이다.
태봉산 정상모습
태봉루, 최영장군 홍산대첩기념비가 세워져 있으며, 아래쪽으로 빙둘러 산책길과
체육공원이 조성되어 있어 주민들의 운동코스로 각광받고 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곳에서 홍산대첩제 행사를 거행하였지만 장소의 협소성, 노인분들의 접근성 등
불편한 점이 많아 지금은 홍산 동헌쪽으로 장소를 옮겨 시행 해 오고 있다.
벚꽃이 필때면 많은 사람들이 꽃구경을 오는 곳이다.
나도 본의아니게 이곳에서 꽃비를 맞으며 생일 축하 야외 만찬을 받았다.
나를 사랑해 주시는 분들이 만들어준 자리여서 영원히 잊지 못 할 추억이 될 것이다.
태봉루
태봉루 현판은 이곳 홍산면이 고향이신 우리나라 서예대가 원곡 김기승 선생의 작품이다.
안에는 태봉루 건립기가 걸려있는데 글쓴이 홍산면장 조종환은 나의 재당숙이시다.
원래 성품이 인자한 분으로 공무원 사회에서 인정받던 분이셨다.
지금도 동네에 나가면 많은 분들이 그분과 친척인 것을 알고 당숙에 대해서 칭찬들을 많이 하신다.
그럴 때 마다 "당신도 면장노릇 잘 하고 가라!" 라는 충고로 들려 책임감을 느끼곤 한다.
최영장군 홍산대첩 전적기념비
최영장군 홍산대첩
『1376(우왕 2) 7월 최영이 홍산(지금의 충청남도 부여 지역)에서 왜구를 크게 무찌른 싸움.
이 싸움은 나세 최무선 등의 진포싸움, 이성계의 황산대첩, 정지의 남해대첩과 함께 왜구토벌에서
가장 빛나는 전적 중 하나이다.
고려때 왜구 침범은 충정왕 때부터 시작되어 공민왕과 우왕 때 가장 창궐했는데,
특히 우왕 14년 동안 378회에 걸쳐 쳐들어와 최고를 기록하였다.
1376년 7월 왜구가 부여에 침입했다가 공주에 이르렀는데, 이 때 목사 김사혁이 정현에서 싸우다가
패전해 공주가 함락되었다.
왜구는 다시 연산현(충청남도 논산지역)의 개태사로 쳐들어와 이를 맞아 싸우던 원수 박인계도
전사하였다.
이 소식을 들은 최영은 출정을 자청하였다. 이 때 우왕은 그가 나이 들어 말렸으나,
최영은 종사와 왕실을 위해 굳이 출정하기를 거듭 요청해 마침내 허락을 받았다.
최영이 양광도도순문사 최공철, 조전원수 강영, 병마사 박수년 등과 함께 홍산에 이르니
왜적이 먼저 험하고 좁은 곳에 웅거하고 있었다.
삼면이 모두 절벽이고 오직 한 길만이 통할 수 있었는데, 모든 장수가 두려워하여
전진하지 못하자 최영이 앞장서서 예기로 돌격해 적을 크게 격파하였다.
이 때 침입한 왜구의 수가 얼마인지는 전해지지 않으나, 공주와 개태사가 약탈당한 것으로
봐서 대규모의 집단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 뒤 왜구들은 늘 "우리가 두려워 하는 자는 백발의 최만호뿐이다." 라고 할 정도로
최영을 두려워하였다. 이후 왜구의 기세가 점점 약해지기 시작하였다.
이 때 전공을 세운 최영에게는 철원부원군이 내려지고, 다른 장수들에게도
차등 있게 벼슬이 제수 되었다.』
토정선 벚꽃길. 나무가 조금만 더 성장하면 이곳도 명소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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