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12월 초, 호주 시드니와 뉴질랜드 북섬 지방을 여행 할 기회가 있었다. 처음 가보는 지역이라서 인상 깊었던 일들이 많았는데 그 중에서도 '타우포의 번지점프' 는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추억거리가 되었다.
타우포 지역은 2만 5천년 전 대규모 화산 폭발에 의해 생성된 뉴질랜드 최대의 호수인 '타우포 호수' 북동쪽에 자리한 인구 2만이 조금 안되는 소도시로서, 타우포 호수는 길이 40km, 폭 30km, 전체 크기가 606 제곱킬로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호수이다.
이곳은 겨울철에도 평균 기온이 10도를 상회하는 온화한 기후를 가지고 있어, 호수를 이용한 각종 레저 스포츠가 성행하는 휴양도시로 잘 알려져 있다.
타우포 번지 점프장도 바로 이 호수에서 발원한 와이카토 강변에 위치 해 있다.
이곳에 도착하기 전 차 안에서 현지 가이드의 설명을 듣는 순간 내 마음은 심한 갈등을 겪고 있었다.
웬만한 놀이 기구는 다 타보았지만 번지 점프만은 몇 번이나 망설이다 그냥 돌아선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이번에도 '해보자' 와 '그만 두자' 는 두 마음이 서로 저울질 하고 있었던 것이다.
동행자 중 한 사람만이라도 신청자가 있었으면 결정 하기가 훨씬 쉬웠을 텐데 아무도 희망하는 사람이 없었다. 주위를 관광하는 중에도 마음은 할까 말까로 고민하고 있었다.
점프대 중간부분 까지는 누구나 들어갈 수가 있었는데 그곳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니 정말 장난이 아니었다. 47m 높이에서 내려다 보이는 푸른 강물은 보는 이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모두들 돌아가려는 순간 나는 가이드에게 한번 해 보고 싶다는 말을 건넸다. 세계적으로 이름 난 곳이기도 하지만 2000년도 우리나라에서 제작된 '번지 점프를 하다' 의 촬영지가 바로 이곳이니, 내가 언제 또 이런 기념될만한 곳을 와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조선생님이 하신답니다." 가이드가 외치자 모드들 가던 발길을 돌렸다. 가이드의 도움을 받아 수속을 밟았다. 마음이 변해서 점프를 포기 했을시 지불한 99달러는 환불되지 않는다는 각서에 서명을 하고, 저울에 올라가 몸무게도 달았다.
아마도 점프자의 신체 정보가 전산망으로 점프대에 보내져 로프의 길이 등이 정해지는 모양이었다.
"혹시 함께 못가더라도 안부나 전해줘." 함께 간 동료에게 주머니속의 잡동사니를 맡기면서 농담을 하고 있었지만 가슴은 더욱 두근거렸다.
점프대의 출구가 열리고 낯선 외국인 둘이서 나를 맞이 해 주었다. 발목에 로프를 묶고 종종걸음으로 점프대 끝으로 갔다. 난간의 맨 끝에 발모양이 그려져 있었고 나는 묶인 발을 가지런히 그림위에 포갰다.
아래를 바라보는 순간 현기증과 함께 공포감이 온 몸을 전율케 했다. 잘못 하다간 뛰어보지도 못하고 정신을 잃을 것만 같았다. 아까 중간 부분에서 느꼈던 아찔함과는 그 차원이 달랐다. 그냥 돌아설까 하는 마음이 불현듯 스쳐 지나갔다. 내 표정을 읽었는지 그들이어깨를 톡톡 쳤다. 위를 바라보라는 것이었다.
"원, 투, 쓰리, 점프!" 그들의 구령에 맞춰 나는 두 팔을 벌리고 몸을 날렸다.
내 몸이 점프대를 떠나는 순간 그렇게도 두렵던 마음이 싹 가시고 동료들의 "와아!" 하는 함성 소리에 손을 흔들어 답례할 만큼 여유도 생겼다.
그러나 물 위에서 몇 번이고 로프의 반동에 의해 솟구쳐 오를 땐 무어라 표현할 수 없는 짜릿함으로 정말 미칠 것만 같았다. 아마도 그 순간의 스릴 때문에 번지 점프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흔히들 등산을 자기와의 싸움이라고 한다. 번지점프 역시 그에 못지 않은 자기와의 싸움이다. 비록 육체적 어려움은 없다 하더라도 짧은 순간 공포감을 이겨내고 결정을 내려야 하는 자기 다스림의 극치이다.
번지점프는 원래 남태평양의 팬타코스트 섬 원주민들이 성인이 되기 위해 나무줄기나 넝쿨을 발목에 묶고 30m 정도의 높이에서 뛰어 내리던 성인식에서 유래 되었다고 한다. 그만큼 인간의 담력을 키우고 스스로를 추스르는 고도의 심리적 극기 훈련인 것이다.
2004년 12월 5일.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173,143번째 타우포 번지점프자로 기록 되었다. 앞으로도 기회가 주어진다면 가끔은 번지점프를 해 볼 생각이다, 연약한 마음의 단련을 위해서.
이제 어떠한 난관이 닥친다 해도 와이카토 강물위로 몸을 날리던 그 마음으로 헤쳐 나갈 수 있을 것 같다.
<2005. 2. 2 부여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