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랑문학관을 떠나 찾은 곳은 모악산 기슭의 금산사였다. 문학관에서 약 40분 정도의 거리에
위치 해 있다.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상가 입구의 무료 주차장을 이용하면 절까지 걸으며 녹음짙은
풍광을 만끽할 수 있다. 우린 절 입구에 있는 유료 주차장을 이용하기로 했다.
사찰 입구에서부터 그 규모와 주위의 배경에 압도 당하는 느낌이 들면서도 잘 왔다는
생각을 갖게한다. 아내도 맘에 들어했다.
분명 전에 다녀간 적이 있긴한데 입구에 새로 지은 건물이며 경내 입구까지 바짝 차를 대는 모습 등이
왠지 생소한 느낌을 주었다. 좀 안으로 들어가자 그제서야 기억들이 떠오른다.
집에와 기록을 뒤져보니 2007년 10월에 홍선생님과 답사를 했던 사실을 알아냈다.
강산이 거의 한 번 변할즘에 다시 찾은 것이었다.
금산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본사로, <금산사사적>에 의하면 600년(무왕 1)에
창건되었으며, 백제 법왕이 그의 즉위년(599)에 칙령으로 살생을 금하고 그 이듬해에 금산사에서
38인의 승려를 득도시킨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이 때는 그 규모나 사격으로 볼 때 별로 큰 사찰이 아니었으며, 1492년(성종 23)에 쓴
<금산사오층석탑 중창기>에 의하면 과거불인 가섭불때의 옛터를 중흥한 것으로
되어있다. 이는 금산사의 터전에 오래 불연이 있음을 강조한 것이다.
- 답사 자료중에서 -
금산사 가는 길
천왕문 주위가 예전보다는 많이 정비되어 있어 생소한 느낌을 준다.
보제루는 절로 들어가는 세 번째 문루 구실을 하는 건물로서 법요와 강설당으로
이용되고 있다.
석가모니께서는 보리수 나무에서 득도를 했다는데 중생은 겨우 커피로 더위를 식히고 있으니---
국보 제62호 미륵전.
신라시대부터 미륵본존을 봉안했던 금당이다.
신라 때의 형태나 규모는 알 수 없지만 현존하는 거대한 불상의 좌대 아래에 있는
철수미좌 등의 형태로 보아 임진왜란 전에는 거대한 미륵존상을 봉안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층수가 달라서 그렇지 외관상으로는 외산 무량사와 많이 닮은 꼴이다.
방등계단의 석종부도.
이 계단에 부도가 있으므로 탑으로 잘못 아는 경우가 있지만, 이는 수계의식을 집행하는
계단이라는데 특징이 있다.
방등계단 앞에는 오층석탑이 있다. 일반적으로 계단 밑에는 석등을 안치하는 것이
통례로 되어 있으나, 이곳에 석탑을 건립한 것은 불전의 정중탑(庭中塔:법당 앞 뜨락의 탑)을
건립하는 방식으로 불탑을 세운 것으로 보인다.
쓰레기 소각장인줄 알았더니 "쓰레기는 안돼요"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그렇다고 다비식을 하는 곳은 아닐테고--
가운데 굵은 철망이 얹혀져 있는 이 아름다운 연화대란 구조물은 대체 무슨 용도로 쓰일까?
금산사 석련대(보물 제23호)
금산사 석등(보물 제828호)
보물 제 476호였던 대적광전은 금산사 내에서 단층 건물로는 가장 웅장한 건물로 수계. 설계. 설법 등의 법요를 진행
했던 곳이다. 이 법당은 정유재란으로 소실된 뒤 1635년(인조 13)에 중건하여 총 28칸의 큰 불전을
이루었으나 1986년 12월에 화재로 소실되어 1992년에 복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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