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남해 1박2일 - 금산 보리암

서해안 나그네 2015. 12. 25. 21:49

독일 마을을 떠나면서 날은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숙소는 독일마을에서도 훤히 내려다 보이는 남송마리나피싱(남송가족관광호텔)이었다.

전망이 아주 좋은 곳이지만 진입로가 협소하여 대형버스가 다니기에는 불편한 점이 있다.

주 도로에서 호텔 진입로로 들어설 때는 도로 경사면 때문에 버스의 범버가 직직 긁히는 바람에

모두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오늘 처음 운행하는 새 차인데--

 

 

 

 

숙소에서 일출을 찍으려했는데 아쉽게도 구름속에 감춰져 버렸다.

 

 

아침 숙소에서 바라본 남해 물건항.  

천연기념물 제150호로 지정되어 있는 물건리 방조어부림도 보인다. 방조어부림은 해안을 따라 길이 약 1,500m,

폭 30m의 숲으로 약 300년 전에 마을사람들이 심어놓은 것이다.  조금만 부지런 떨면 아침 산책코스로

아주 좋은 곳이기도 하다.

 

 

 

 

물건리항 방파제를 사이에 두고  두 등대가 있다.

하선생님께서  영원히 만날 수 없는 이 두 등대의 이야기를 들려 주셨는데 영 생각이 안난다.

 

 

물건리항의 아침 풍경은 마치 미얀마 인레호수의 아침을 연상케 한다.

 

 

숙소에는 이런 시집이 비치되어 있는데 바로 이 호텔 사장님의 시집인 것 같다.

책속의 약력을 보니 농협은행에 다니시다가  퇴직 후  호텔사업을 하고 계신 모양인데

문학인의 풍부한 감수성으로 이토록 전망좋은 곳을 고를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호텔 주차장에서 바라본 독일마을 원경

 

 

 

 

 

남송가족호텔 모습.  시설이 최고급은 아니지만 가족이 하룻밤 묵기엔 부족함이 없다.

 

 

숙소를 떠난 차가 희미한 햇살을 가르며 도착한 곳은 복곡쪽 주차장 입구였다.

이곳에서 마을 버스로 갈아타고 금산 8부 능선까지 오른다음 약 1km를 걸으면

보리암에 다다른다.

 

 

"남해 금산은 지리산맥이 남쪽으로 뻗어내려 형성된 산으로 원래 원효대사가 이곳에 보광사라는

사찰을 지은 뒤 산 이름이 보광산으로 불리어 왔으나,  태조 이성계가 이곳에서 백일기도를

드린 뒤 왕위에 등극하게 되자 보은을 위해 영구불멸의 비단을 두른다는 뜻의 금(錦)자를 써

금산이라 하였다고 전한다.

 

금산은 영남에서는 합천의 가야산, 방장산(지리산)과 자웅을 겨루고 중국의 남악에 비견되기도

했으며, 바다 속의 신비한 명산이라 하여'소금강산' 혹은 작은 '봉래산'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금산이 작은 봉래산이라는 이름을 얻을 만큼 명산으로 칭송을 받게 된 것은 멀리 떨어진 남해의

섬속에서 다시 아득한 섬과 바다를 눈 앞에 두고 우뚝하게 솟은 돌산이라는 점에서 유람객에게

속세를 떠난 신비감을 주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상주해수욕장쪽 등산로로 올라오는 게 경치가 훨씬 아름답다고 한다.

 

 

 

 

 

 

 

 

 

 

 

 

 

 

 

 

 

 

 

 

 

 

 

 

 

 

 

 

 

"683년 원효대사가 이곳에 초당을 짓고 수도하면서 관세음보살을 친견한 뒤로 산 이름을 보광산,

초당 이름을 보광사라고 했다. 훗날 이성계가 이곳에서 백일기도를 하고 조선 왕조를 열었다는데

그 감사의 뜻으로 1660년 현종이 이 절을 왕실의 원당으로 삼고 산 이름을 금산, 절 이름을

보리암으로 바꿨다."

 

 

 

 

 

 

 

 

오전 이른 시간이라서 시야가 선명하진 않았지만 올망졸망 모여있는 남해의 섬들이 아름답게 보인다.

둘 다섯의 이두진씨가 이곳에 머물면서 그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밤배"라는 유명한 노래를 만들었단다.

상주해수욕장 부근에 노래비가 세워져 있다고 한다. 

 

 

하선생님께서 이곳이 기가 센 곳임을 몸소 보여주고 있다.

 

 

어느 새 우리 일행들도 탑돌이를 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딱 한가지의 소원만 빌어야 이루어진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