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해양 관계자들은 사전 준비를 위하여 근 1년 간을 어촌에 파견하여 그들과 함께 생활했다는 것이다.
공무원이 어부들 속에 파고들어 그들의 실정과 문제점들을 같은 입장에서 공유하는 한편 어느 시기에 한국어선 몇 척이
어느 지점에서 어로 작업을 하였는지 등 정확하고 방대한 자료를 수집 하는데 게을리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니 그토록 치밀하게 준비를 해 온 사람들과 협상 테이블에서 우위를 점할 리 없으니 굴욕적인 외교 협상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 당시 강의를 들으면서 공직자의 한사람으로서 얼굴이 화끈해 지는 미안함을 느꼈었지만, 난 단지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말단 공무원이란 생각으로 애써 위안을 삼았었다.
최근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에 대한 우리 정부의 대처 모습을 보면서 그 강의가 생각이 난다. 한국 국민의 분노와 한중 수교
12주년을 맞아 중국이 한 발 물러선 듯한 상황에서 급하게 봉합 되었지만 잠시 휴전일 뿐 근본적인 문제는 그대로 남아 있다.
향후 중국의 조치를 예의 주시하며 감정적 대응보다는 실질적인 결과를 확보하는데 주력하겠다는 정부 당국자의 말을
들으면서도 왠지 미심쩍은 기분이 가시지 않음은 나만의 느낌일런지---
사실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은 이미 8년 전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이 주된 의견이다.
1996년 중국 사회과학원에 '동북공정'이 핵심 연구 과제로 지정되었고, 2002년에는 동북공정 프로젝트가 공식 출범하는 등
계획된 과정들을 거쳐 오면서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다. 그 동안 이런 상황들을 정부가 익히 알고 있었을 텐데도 이렇다 할
대책을 사전에 준비하지 않았다는데 국민들이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다.
물론 한.중.일 3국의 역사전쟁 틈바구니에서 현실적 외교 관계라든지 빗발치는 국민 감정으로 진퇴양난을 겪고 있는 정부의
입장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언제나 뒷북만 울리면서 제 목소리 한 번 내지 못한다는 아쉬움을 영 떨쳐버릴 수가 없다.
이제부터라도 선제 공격에 일방적으로 당하지만 말고 역사 왜곡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는 장기적 대책 마련에 노력하는 정부의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할 것이다.
또한 이러한 노력은 정부만이 아니라 민간 차원에서도 활발히 이루어져야 한다. 일본의 역사 왜곡이 그나마 이 정도에서
머무르고 있는 것도 민간외교 노력의 힘이 컸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일본에는 평생 독도 문제만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많다고 한다. 반면에 한국의 고구려사 전문가는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이고, 독도문제 역시 다를 바 없으니 인기학과 위주의 교육 풍토가 얼마나 큰 손실을 가져오는 가 새삼 느끼게 한다.
현재 국제 사회에서 역사 전쟁은 결국 논리 싸움이며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의 문제라고 볼 때 이는 정말 심각한 일이다.
독도를 다케시마와 병행 표기하고 동해를 일본해로 표기하는 국가가 늘고 있다는 것은 세계인들이 일본의 의도대로 역사를
바라보고 있어 이미 논리 싸움에서 밀리고 있지 않나 하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
역사 왜곡은 주로 해당국의 사전 계획과 극우 세력들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 같다.
우리가 우리 역사를 잘 알지 못하듯 그들도 역시 일반 국민 대부분은 역사에 대한 지식이 짧다고 한다. 따라서 잘 알지도 모르는 사람들한테 무조건적인 반감을 가지기보다는 기회 있을 때마다 왜 우리가 분노하는지 정확한 역사의 사실을 심어주는 것이
우리 일반 국민들이 해야 할 일일 것이다.
다행히 최근 우리 역사를 바로 알려는 사회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고 대학의 역사학 강의에 많은 학생들이 몰리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려온다. 부디 일회성에 그치지 말았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역사 전쟁, 그것은 쉽게 종료되지 않을 총칼 없는 현대전임에 틀림없다.
<2004. 9. 3 부여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