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뉴욕을 여행하고 있을 때 가이드가 들려준 말이 있다. 그 곳에서는 규정을 위반하고 나서 '잘 봐 달라'는 말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시민들이 여간해서 잘못을 저지르지도 않지만 설령 규정을 위반했더라도 '당신은 법을 위반 했습니다'라는 말 한마디로
당사자는 그에 상응하는 조치에 대해서 당연하게 받아들인다며, 이는 미 국민들이 선천적으로 뛰어난 시민 의식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오랜 동안 사회적 규율에 길들여진 결과가 아닌가 하는 견해를 피력했다.
요즈음 그 가이드의 말을 떠올리게 하는 일들이 자주 벌어진다.
독자 여러분들은 혹 공중화장실의 화장지가 도난 당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이것은 실제로 우리 부여 사회에서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다. 그냥 화장지만 빼가면 그나마도 고맙겠는데 화장지 케이스까지 다 부수어 놓고 가져가 버린다.
이것도 한 두 번이어야지 이틀이 멀다하고 없어지니 퇴근 할 때는 아예 화장지를 철거해서 보관하는 불편을 반복하고 있다.
화장지 도둑은 그래도 귀여운 쪽에 속한다. 좌변기의 수조 뚜껑을 가져가는 사람, 무슨 분개할 일이 그리도 많은지 화장실
거울을 모조리 깨부수는 사람, 심지어는 세면대 옆에 부착해 놓은 비눗물 통까지 떼어가 버린다. 관리하는 직원들은 이런
현상들이 어제 오늘만의 일이 아니라며 이미 익숙해져 있는 느낌이다.
며칠 전에는 야간에 궁남지 연밥을 채취하던 일당을 현장에서 경찰에 넘긴 적이 있다. 그동안 궁남지내 동식물 무단 채취로
현장에서 훈방한 사례는 여러번 있었지만 사법 당국에 고발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그만큼 그 동기가 계획적이고 훼손한
상태가 방대해서 용서할 수가 없었다. 그들은 아마도 절도죄를 적용받게 될 것이다.
궁남지 연밥을보존하는 이유는 겨울철 볼거리 때문이다. 연잎이며 연밥이 자연스럽게 고사한 후 겨울철에 눈이 덮이면 궁남지와 어우러지는 그 모습이 또한 일품이어서 전국의 사진 작가들이 다시 찾게 된다. 따라서 지역에 외지 손님을 불러 모을 수 있는
우리의 소중한 자산인 것이다.
'나 하나쯤이야'하는 생각, 훼손하는 현장에서 조차도 단속하는 공무원에게 '당신이 뭔데 시비냐'며 오히려 큰소리 치는
뻔뻔함을 언제까지 우리의 자화상으로 가지고 있어야 할까.
이러한 공공재산은 군민의 혈세로 유지된다는 근본적 사실을 차치하고서라도 내물건이 소중한 것처럼 남의 재산, 특히 다수가 공유하는 공공재산의 소중함은 왜 깨닫지 못하는 것일까.
국민소득 1만 달러를 넘어 2만 달러를 향해 뛰고 있는 나라, 올림픽 순위 10위권을 목표로 하는 강국으로 발전 하였지만,
사회 질서를 유지 해 나가는 우리들의 양심은 아직도 메달권 저 멀리서 서성이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울 뿐이다.
<부여뉴스 2004. 8.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