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들이 가장 즐겨 늘어놓는 이야기는 단연 군대 이야기일 것이다.
술자리든 야유회든 제삿날이든 남자들이 모인 자리라면 다른 이야기를 하다가도
어느 새 군 시절의 무용담들로 화제가 바뀌어 버리곤 한다.
이미 수차례 써먹었을 얘기들을 너도나도 늘어놓다 보면 밤새는 줄 모르는 게 군대 시절의
추억담이다. 아내들은 또 군대 이야기냐며 귀 따가워 죽겠다고 불평이지만 한번 시작된 이상
한 순배는 돌아가야 잠잠해지기 마련이다.
이렇듯 군대란 입영을 앞둔 사람에겐 절망과 두려움의 존재로, 제대를 한 사람들에게는
평생 잊지 못할 추억으로 기억되는 곳이다.
냉정하기 이를 데 없다는 소릴 자주 듣는 나도 입영하기 위해 고향 마을을 떠날 때는 멀어져 가는 오두막집을 바라보면서
치미는 눈물을 간신히 삼켰었다. 까까머리로 연무대 초등학교 교정에 모여 있을 때 함께 근무하던 병무담당 선배 공무원이
다가와 "조주사! 건강하게 잘 갔다 와"하면서 작별 인사를 할 때는 정말 미칠 지경이었다.
집결지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않은 수용연대 정문을 들어서면 그때부터는 정말로 극적인 세계가 기다리고 있다.
그야말로 내 몸이 내 몸이 아니다. 담벼락 하나 사이로 이렇게 다른 세상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초긴장 하면서 서서히
길들여져 가는 것이다.
나는 '연말 쓰레기 군번'으로 최전방 철책근무를 했다.
'쓰레기 군번'이란 연말에 입대한 사람들로 이미 보직이 다 채워져 마땅한 자리가 없기 때문에 원래 받은 병과와는
무관하게 빈자리에 배치되는 것을 말한다. 그 당시 논산 제2훈련소를 나오면 대부분 후방으로 보직을 받아 배치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나 연말에 입대한 사람들은 최전방까지 팔려가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덕분에 민간인 신분으로는 좀처럼 가기 어려운 펀치볼 주변의 도솔산, 대암산을 누비고 다니는 영광을 맛보았다.
중동부 전선은 산악 지대라서 여름에도 초소 근무를 서려면 속에 츄리닝을 받쳐 입고 나가야지만 밤을 새울 수 있다.
계곡을 스쳐 불어오는 바람이 어찌나 차갑던지 병사들은 그 바람을 칼바람이라 불렀다.
전방에서 처음 추석 명절을 맞는 신참들은 거의가 다 고향 생각에 눈물을 흘린다. 휘영청 밝은 달 아래 초소에서 밤을
지새다보면 고향에서 가족 친구 연인들과 보냈던 바로 엊그제의 일들이 한없는 그리움으로 밀려온다.
자기도 겪었던 일이기에 고참은 애정어린 질책을 한다.
"야 임마! 군인이 눈물은 무슨---"
때로는 밤새 고참의 고민을 들어줘야 할 때도 있다.
사회에서 재수를 하다 입대했거나 변변한 직장 없이 군에 온 고참들이 제대를 앞두고 겪는 심적 고통은 정말 큰 것이다.
요즈음 연예계 스타와 프로야구 선수들의 병역기피 문제로 세상이 시끄럽다. 잊혀질만 하면 터지는 병역비리 사건,
원정 출산으로 추태를 부리더니 이번엔 또 소변을 가지고 장난을 친 모양이다.
한창 잘 나가는 시기에 군대라는 큰 장애물에 가로막혀 있고 이것저것 인생을 설계해야 할 나이에 3년 가까운 시간을
본인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소비해야 하는 젊은이들의 안타까운 마음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그래도 어찌하랴,
이 땅에 태어난 죄인 것을.
그동안 수많은 선배들이 지금 보다도 더 힘든 과정을 거치면서도 노력으로 성공한 사례들을 교훈삼아 군대를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사고의 전환이 무엇보다 필요한 것 같다.
사실 우리 사회에는 군에 가지 않아도 될 조건임에도 자원해서 입대하는 용기 있는 젊은이들도 있다. 그만큼 군대 생활이란
자신의 의지를 키우고 인생 역경을 헤쳐 나갈 수 있는 능력 배양의 장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번에 변가지고
장난치다 변을 당한 자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소변놀이'란 어릴 적 동무들과 남의 집 담벼락에 그림 그리던 것이 바로 '소변놀이'라고.
<2004. 9. 24 부여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