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주유소 행정처분을 집행하기 위하여 담당 직원과 동행한 적이 있었다.
사전에 진술기회도 충분히 주었고, 본인도 잘못을 인정하고 있어서 별 일은 없겠지마는
그래도 영업정지 3월이란 중한 처벌을 받다보면 사람의 감정이 어떻게 변할 줄 모르는 일이라서
직원들만 보내기엔 좀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처벌 사유인즉 대형 화물차량에 일반 등유를 팔다가 석유품질관리원의 단속에 걸린 것이었다.
야간에 단속된 걸 보면 아마도 정보를 입수한 단속팀의 잠복근무에 적발된 것 같았는데, 그렇다고 보면
상습적으로 불법 판매 행위를 해왔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장에 도착해보니 아예 영업을 포기한 듯 배달차량 등 모든걸 정리해 놓은 상태로 집이 비어 있었다.
미리 연락을 한 상태여서 곧바로 행정집행을 해도 문제는 없었지만 그래도 전화 연락을 취한 다음
공무집행을 하도록 했다.
주유기며 저장고, 배달차량 등 모든 시설물을 봉인하고 주유기마다 처분 명령서를 붙이고 있을 때
외출했던 여주인이 돌아왔다. 아주 젊은 여성이었다.
다분히 의례적이었지만 미안하다는 인사를 건냈다.
처음엔 의외로 담담하던 여주인은 조금 있으려니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도로에서 볼 수 있도록 붙인 처분명령서를 잘 보이지 않는 안쪽으로 옮겨 달라는 부탁을 해왔다.
문을 닫은 상태에서 커다란 계고장이 붙어있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짜 기름을 팔다 걸린 것으로 간주해버려
영업을 재개해도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이미 명령서를 거의 다 붙인 상태였을뿐만 아니라 안보이는 곳에 붙이면 계도 효과가 없기 때문에 들어줄 수는 없었다.
"행정처분을 집행하여야하는 우리 입장도 생각해 달라" , "오히려 지나는 사람들이 내용을 읽어봐야 그래도
가짜유류를 판 것은 아니었구나 하고 알게 될 것 아니냐"며 안정을 시키려 노력했다.
하지만 여주인은 계속 눈물을 흘리며 주문을 외우듯 말했다.
"부탁 드릴게요. 제발 좀 옮겨주세요."
새로운 도로가 나면서 차량통행이 대폭 줄어버린, 한눈에 봐도 영세성이 묻어나는 그런 주유소에서 젊은 부부가
오죽했으면 그런 불법행위를 하였을까 생각하니 마음이 막 요동쳤다.
별 것도 아닌 계고장 위치 좀 바꿔준다한들 무슨 문제가 있으랴. 뜯어서 다시 붙일까?
차라리 우리한테 막 화를 낼 일이지--
불법유류를 넣어달라고 종용했을 화물차 기사나, 불법인줄 뻔히 알면서도 부탁을 들어준 사업주 모두가
원망스러웠다.
독한 마음으로 잠시 흔들리던 마음을 가라 앉혔다.
그래도 잘 보이는 곳에 게시하여야만 다른 사람들에게 각성의 효과도 줄 수 있는 등 공익성이 클 것이기 때문에
양보하면 안 될 일이었다.
서둘러 행정집행을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왔지만 그 여주인의 울던 모습은 영 뇌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지금도 그 앞을 지나칠 때면 그 모습이 떠오르곤 해서 마음이 찡해온다.
눈물, 특히 젊은 여인의 눈물이야말로 잔잔한 호수에 파랑을 일으키는 바람과도 같아서 이따금씩
사고(思考)에 안개를 드리운다.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빵터진 이야기 (0) | 2013.09.23 |
---|---|
기회를 살릴 줄 알아야 (0) | 2013.06.19 |
부여의노래 (0) | 2013.06.12 |
라면 때문에 고민하다 (0) | 2013.03.19 |
이런 사람이 군의원이라니 (0) | 2012.09.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