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왜 사라졌을까

서해안 나그네 2012. 5. 6. 16:15

 

부여군에는 어느 날 갑자기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진 것들이 몇 가지 있다.

너무도 조용하게 빨리 없어져 버려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것들이 존재 했었는지조차도 모른다.

지시한 사람과 담당자 아니고서는 그것이 왜 사라졌는지를 알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후일 그 연유를 듣고 보면 참 황당하기

그지없다.  행정이 이처럼 휘둘려서야 되겠는가 하는 의구심마저 들 때가 있다.

 

아마도 2004년도쯤의 일일 것이다.

'삼천궁녀 진혼제' 라는 행사가 구드래에서 행해졌던 일이 있다. 이 행사를 만들기 위해서 사전에 여러 학자들이 모여

세미나도 개최하는 등 의견들을 병합하여 연구 끝에 만든 행사였다.

 

필자도 들은 기억이 나는데 백제시대라는 점을 감안하면 결국 우리의 토속신앙을 바탕으로 행사를 치를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발표자들의 의견이 있었다. 그래서 무속신앙을 주축으로 행사를 진행하게 되었다.

 

무대를 중심으로 행사장 둘레에 수많은 참여자들이 촛불을 켜고 의식행사를 하던 그 풍경이 꽤 볼만 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러나 이 행사는 오래가지 못하고 1,2회 정도를 끝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당시에도 기독교인들이  구드래 공원에서 맞불 집회를 열어 행정기관이 애를 먹었던 일이 있었는데, 군수가 그들의 손을

들어준 것이었다. 군민들의 의견청취 한 번 없이 일방적인 지시로 공들여 만든 행사가 없어진 것이다.

그때 교회에 다니는 지인한테 반대하는 이유를 물은즉 '왜 전국의 귀신을 부여로 불러 들이냐'는 것이었다.

 

봄철에 딱히 보여줄 만한 축제가 없는 부여에서 '삼천궁녀 진혼제'는 좋은 소재였다고 아쉬워 하는 사람들이 많다.

 

다른 축제처럼 복잡한 준비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되고 많은 예산도 들어가지 않는다. 이름난 무속인 1,2명 정도만 초청해서

진행하면 그들의 특성상 행사에 참여코자 하는 사람들은 입소문 따라 구름같이 몰려오게 마련이다.

 

전국에 그런 축제가 드물어서 지금까지 지속되어 왔다면 아마도 관광객 집객에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그저 전만 펼쳐주면 알아서 이루어질 수 있는 축제가 사장되고 만 안타까운 상황이다. 잊혀져가는 우리 고유의 토테미즘

신앙을 현대의 볼거리로 재탄생시킴은 물론 패망의 한을 안고 차가운 강물에 사라져간 백제인들의 원혼을 위로하기

위해서라도 이 축제는 다시 부활되어야 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필자가 사적지관리사무소 근무할 때에 담당자의 권유로 선착장 가는 길 옆에 십이지신상을 세워놓은 적이 있었다.

제50회 백제문화제 때 사용한 것으로 이름 있는 장인의 작품일 뿐만 아니라, 하나의 볼거리도 되고 아이들의 교육 자료로도

활용할 가치가 있겠다 싶어 중장비를 임대하여 죽 심어 놓았었다.

동물의 얼굴 모습이 회화적으로 잘 조각되어 있고, 크기도 우람하여 당시 구드래 공원의 텅 빈 부지에 아주 잘 어울리는

작품이었다.

 

그런데 이것 역시도 얼마 지나지 않아 뽑혀서 지금은 어디에 가 있는지조차 알 길이 없다. 뒤에 알아보니 산책 나온 주민들이

무섭다고 하여 없앴다고 하는데 진실은 그게 아니었다. 많은 예산을 들여 만든 작품을 서두와 같은 맥락의 이유로 그냥

제거 해 버린 것이다.

 

지난 해 백제문화제 때에도 강변의 코스모스 단지 안에 목장승을 세우고 새끼줄을 연결하여 관광객들이 쓴 소원지를

달아놓은 적이 있었다. 문화제가 끝나고 장승을 철거하려는 직원들에게 계속 세워두는 게 어떻겠느냐고 했더니만

다들 펄쩍 뛰었다. 예전에도 목사님들의 민원 때문에 난리가 났었다는 것이었다.

고집을 부려보고도 싶었지만 직원들의 걱정이 너무 커 그냥 순응하고 말았다.

 

전국 목장승 깎기 대회에 참석한 내로라하는 장인들이 만든 작품이 지금까지 설자리를 찾지 못하고 소품 창고에 그대로

누워 있다. 한 종교단체 때문에 말도 안되는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4대강 살리기 사업이 완료되어 가꾸어야 할 수변 공간이 매우 넓어졌다. 그 휑한 공간 어딘가에 이웃 청양의

장승공원 같은 것을 우리도 만들었으면 좋겠다.

 

얼마 전 부여군은 목사님과의 간담회를 가졌다. 그 자리에서 보건소 로터리에 성왕 동상을 세운 것과 백제문화단지 능사에

스님이 드나드는 것을 문제 제기한 자가 있었다는 후문이다. 아니 십자가 있는 곳에 목사가 있고 부처 있는 곳에 승이 있는 게

당연한 일 아닌가.

어찌 모든 것을 자신의 종교적 가치판단으로만 해석하려 하는지 답답할 노릇이다.

 

단체들과의 간담회를 가지면 건의된 내용들이 문서화되어 전 직원한테 공람이 되는데 이번 간담회는 감감무소식이다.

또 얼마나 황당한 얘기들이 오갔는지 짐작케 하는 부분이다.

 

그런데 이런 문제는 편협한 사고를 가진 종교 지도자에게만 있는 건 아니다.

특정 종교단체의 민원이라 할지라도 당연히 충분한 토의를 거쳐 해결하여야 함에도 즉흥적으로 처리해 버리는 단체장에게도

책임이 있는 것이다.

부여군이 기독교인들만 사는 동네가 아닌 이상 타종교 신도나 종교가 없는 일반 군민들의 의견도 마땅히 존중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부여군의 민선 4,5기 단체장의 종교가 기독교이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앞서 말한

그런 일들이 흔하게 벌어지고 있었던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앞으로도 정림사지 복원사업 등 여러 분야에서 이런 일들이 또 걸림돌로 작용될 소지가 얼마든지 상존하고 있다.

만에 하나라도 특정 종교단체의 부당한 압력이 가해진다면 모든 사실을 공개하고 군민의 공론화를 거쳐 대처해 나가야

할 것이다.

단체장의 종교적 신념을 존중하여 제례행사의 제관을 회피하는 사례는 인정할 수 있어도 이와 같은 상황의 번복은

이제는 군민들이 이해하려 들지 않을 것이다.

 

예수께서 우리에게 준 가장 근본적인 가르침은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배려와 희생의 정신이다.

따라서 내 종교가 중요하면 타인의 종교도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 그리고 우리 고유의 전통문화를 종교적 잣대로만

해석하여 모든 걸 우상숭배로 치부해 버리려는 정서도 개선되어야 한다.

 

역사적인 면을 고려해 볼 때 어쩌면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내는 격이라는 비판을 들을 수도 있고, 예수의 가르침과는

달리 타인에 대한 시기와 질투, 증오로 비춰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게 영 아니다 싶으면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아흔아홉 마리의 양보다 한 마리의 길 잃은 양을 더 중히 여기고, 돌아온 탕자를 더 사랑했던 예수님의 말씀처럼 정말로

진정한 종교 지도자로서 시시콜콜 이유를 걸지 말고 차라리 그들을 위해 기도하라,

"주여! 저들의 우매함을 용서 하시고 하느님의 품안으로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라고.

 

      -부여저널 2012.5월호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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