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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살아 나는 실적주의

서해안 나그네 2012. 3. 2. 23:12

 

70~80년대의 행정은 보여주기 식 실적위주의 전시 행정이 주류였다.
내가 처음 공직에 발을 들여놓을 때가 78년도였는데 면사무소에 첫 출근하던 때의
일이 지금도 기억난다.

직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잠시앉아있으려니 산업계장이 밀짚모자 하나를 건네주며
"인사 끝났으면 나가보세" 하며 데리고 간 곳이 퇴비증산 현장이었다.
상부의 심사를 앞두고 전직원이 퇴비증산에 동원되고 있었다. 사실 그 많은 퇴비 더미를 풀만 베어서 일정규모 이상으로

쌓아올린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대부분은 나뭇가지로 틀을 짠 다음 그 위에 풀을 덮어 위장하는 수법을 썼다.

전시행정의 대표적 사례였던 퇴비 증산은 새벽풀베기 운동, 야간 강화운동, 도로변 피사리 등으로 여름내 이어졌었다.

도로변 위주의 겉치레 행정과 갖가지 구호가 난무하는 후진국 전시행정의 전형적인 특징이었던 것이다.

요즈음 시끄러운 이명박 정부의 국내 정세도 그 유형은 예전과 다르지만 결국 조기에 뭔가 보여주려던 성급한 실적주의가

불러온 결과가 아닌가 싶다.

원래 국제외교라는 것이 모든 상황을 철저히 준비하여도 그 협상 과정이 순탄치 아니함에도 겨우 취임 두 달여 만에 캠프를

찾았다가 결국 망신살만 뻗치고 말았다.
그럴듯한 방미실적 하나 만들어보려다가 첫 단추를 잘 못 꿰는 바람에 오늘날 심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일본 천황에게 머리를 조아린 결과도 독도문제 일본정부 개입이라는 화살에 뒤통수를 맞았다.

중국에서는 한미동맹의 구시대적 유물론으로 환대 아닌 환대를 받았다. 짧은 판단인지는 모르겠지만 지난번 3개국 순방은

국민의 주권과 자존심에 큰 상처를 남긴 것 같아 얻은 것 보다는 잃은 게 더 많은 외교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여타의 정책들도 마찬가지이다.
영어 몰입교육, 특목고 증설계획 등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은 그렇잖아도 버거운 사교육비 부담만 늘리는 결과를 초래 해

서민대중의 허리를 바짝 구부려 놓았다.

한반도 대운하, 의료보험 민영화, 물 사유화, 전력사업 민영화 등은 국민의 반대에 부딪혀 일단 보류된 상태이지만 언제 또

슬며시 고개를 들지 모를 일이다.
대북정책에서도 실익보다는 오히려 답답하게 된 건 우리가 아닌가 싶다.

모든 예산을 10% 절감하여 경제 활성화 명목에 재편성토록 한 사례는 대표적 구시대의 유물로 평가받고 있다.

경상비를 아끼자는 데는 이해가 가지만 결국 지역 사업을 위해 세워진 사업비마저 토막을 내어 우습게 만드는 것은 국민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제스처일 뿐이라는 지적이다.

이토록 대다수의 국민들이 우려의 목소리를 내는 정책들을 줄기차게 밀어붙이려 하는 데는 자신의 임기 중에 뭔가 새로운

업적을 남기려는 실적위주의 욕망이 앞서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 정부의 정책들을 송두리째 무시해 버리거나 국민의 소리를 애써 외면한 채 자신만의 특별한 업적을 남기려는 실적주의가 오늘날 삐걱거리는 한국 사회의 한 원인은 아닐른지 곰곰이 생각 해 볼 일이다.


동양일보 2008. 6. 27일자 <프리즘>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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