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수집

신동엽 서사시 금강 제 3 장

서해안 나그네 2024. 9. 18. 22:35

 

어느  해

여름  금강변을  소요하다

나는  하늘을  봤다.

 

빛나는  눈동자

너의  눈은

밤  깊은  얼굴  앞에

빛나고  있었다.

 

그  빛나는  눈을

나는  아직

잊을  수가  없다.

 

검은  바람은

앞서  간  사람들의

쓸쓸한  혼을

갈갈이  찢어

꽃  풀무  치어  오고

 

파도는,

너의  얼굴  위에

너의  어깨  위에,  그리고  너의  가슴  위에

마냥  쏟아지고  있었다.

 

너는  말이  없고,

귀가  없고,  봄도  없이

다만  억천만  쏟아지는  폭동을  헤치며

고고히

눈을  뜨고

걸어가고  있었다.

그  빛나는  눈을

나는  아직

잊을  수가  없다.

 

그  어두운  밤

너의  눈은

세기의  대합실  속서

빛나고  있었다.

 

빌딩마다  폭우가

몰아쳐  덜컹거리고

너를  알아보는  사람은

당세에  하나도  없었다.

 

그  아름다운,

빛나는  눈을

나는  아직  잊을  수가  없다.

조용한,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다만  사랑하는

생각하는,  그  눈은

그  밤의  죽음거리를

걸어가고  있었다.

 

너의  빛나는

그  눈이  말하는  것은

자시다,  새벽이다.

승천이다.

 

어제

발버둥치는

수천  수백만의  아우성을  싣고

강물은

슬프게도  흘러갔고야.

 

세상에  항거함이  없이,

오히려  세상이

너의  위엄  앞에  항거하려  하도록

빛나는  눈동자.

너는  세상을  밟아디디며

포도알  씹듯  세상을  씹으며

뚜벅뚜벅  혼자서

걸어가고  있었다.

 

그  아름다운  눈.

너의  그  눈을  볼  수  있는  건

세상에  나온  나의,  오직  하나

지상의  보람이었다.

 

그  눈은

나의  생과  함께

내  열매  속에  살아  남았다.

 

그런  빛을  가지기  위하야

인류는  헤메인  것이다.

 

정신은

빛나고  있었다.

몸은  야위었어도

다만  정신은

빛나고  있었다.

 

눈물겨운  역사마다  삼켜  견디고

언젠가  또다시

물결  속  잠기게  될  것을

빤히,  자각하고  있는  사람의.

세속된  표정을

개운히  떨어버린,

승화된  높은  의지  가운데

빛나고  있는,  눈

 

산정을  걸어가고  있는  사람의,

정신의

깊게.  높게.

땅  속서  스며나오듯한

말  없는  그  눈빛.

 

이승을  담아버린

그리고  이승을  뚫어버린

오,  인간  정신  미의

지고한  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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