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중에 군데군데 놓여있는 초석들을 볼 수 있는데 이 출처를 알게되면
우리 공무원들이 그런 행동을 해도 되는 것인지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평소 정원을 아름답게 하기 위하여 가져다 놓은 돌이겠거니 하고 무심코 보아 넘긴 돌들이
1,300년 전 백제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유물이란 사실을 알게 된지는 약 한 달 전쯤의 일이었다.
역사 강좌를 해 주시는 은사님과 함께 읍사무소 앞을 지나고 있었는데 선생님께서 갑자기 "자네들! 이 돌들이 어디서
왔는지 아는가?" 하고 물으셨다. 우리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자 선생님께서는 당신이 조사한 내용을 들려주시면서
"공무원들이 이래도 되겠느냐" 며 여지없이 뼈 있는 한마디를 남기셨다.
이야기인즉 읍사무소에서 담을 헐고 화단을 꾸미면서 여기에 무언가 장식할 도구들을 수집하던 중 군수리 지역에 있던 성말리의 초석을 무단으로 옮겨다 놓은 것이란다. 그리 멀지 않은 과거의 일인데도 누구 하나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아 역시 우리 역사에 대한 무지의 소치가 아닌가 싶다.
이런 사례는 비단 읍사무소뿐만이 아니다.
정림사지의 초석들도 제자리를 잃고 담벼락 쪽으로 밀려나 있고 심지어는 나무 밑의 쉼터로 이용되고 있는데 옮기다
그랬는지 귀퉁이가 깨어져 있는 초석도 있다.
사학자들은 초석의 모양이나 크기를 보고 고대 건축물의 형태를 알 수 있다고 한다. 그만큼 초석은 중요한 것이다.
더구나 패망한 국가로서 백제역사를 미루어 알 수 있는 유물이 초석과 와당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초석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는 익산의 미륵사지나 남원의 만복사지 등을 가 보면 쉽게 그 건물의 크기가 상상이
되지만, 그렇지 못한 곳에서는 아무리 설명을 해도 이미지가 좀처럼 떠오르질 않는다.
그래서 그런지 일본인들은 실제 초석이 없으면 모형이라도 만들어 복원을 해 놓는다고 한다. 우리가 본 받아야 할 일이 아닌가 싶다.
또한 공무원들의 역사 의식을 높이는 일 역시 무엇보다도 먼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결국 관광을 자원화 하여야 할
부여군의 공무원이라면 역사문화 관광은 해당 부서 직원이나 알아두면 될 일로 일축해 버리는 편협한 생각에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
언제 어디서 또 어떤 과오를 저지를지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2005. 5. 19 부여뉴스>
'지난글 모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불량고객, 공무원은 어디까지 참아야 하나 (0) | 2012.02.01 |
---|---|
무너져 가는 교권 (0) | 2012.01.30 |
계백의 달 (0) | 2012.01.30 |
부여 발전의 책임성 (0) | 2012.01.28 |
백마강 유람선에 대한 바람 (0) | 2012.01.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