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바람 없는 화창한 봄 기운에 마음껏 기지개를 켠 벚꽃이 여기저기서 눈부신 자태를 뽐내고 있다.
우리 지역에도 보리고개로 이어지는 도로변 일부 구간이 마치 흰 구름이 내려 앉은듯 아름답다.
하지만 난 그 벚꽃을 볼 때 마다 전설 같은 얘기가 떠올라 슬퍼지곤 한다.
아름답기로 유명한 전.군 (전주-군산)가도의 벚꽃나무는 사실상 그 옛날 우리 지역에 심으려던 것을
일부 인사들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혀 지금의 그곳으로 옮겨가게 되었다고 한다.
'왜놈들의 꽃을 왜 하필 부여에 심으려고 하느냐'는 게 반대 이유였단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는 왜놈들의 꽃이라고 한사코 반대하던 그 꽃을 보기 위하여 많은 군민들이 시간과 비용을 낭비하면서까지 복잡하기 이를 데 없는 거리를 헤매고 있다.
원래 계획대로 부여에 식재를 하였더라면 부여는 지금쯤 짭짤한 벚꽃 특수를 누리고 있었을 것이다. 사적 명승지에다 꽃
구경까지 곁들인다면 그보다 더 좋은 여건이 어디 있겠는가. 뒤늦게 시내 일부와 석성, 임천 등지에 벚나무를 식재하였지만
뭐든지 2등은 별 효과가 없는 법, 군민들의 타지역 외출은 다소 막을 수 있을지 몰라도 관광객을 불러 모으기에는 요원한 것
같다.
일본인에 대한 민족적 감정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근시안적이고 편협적인 행동의 결과가 오늘날 너무 큰
아쉬움으로 남아 있으니 그분들을 원망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더구나 이러한 사례는 비단 벚꽃에 그치지 않는다. 일본인들이 고대국가 시절 자기 나라에불교를 전래 해 준 은혜에 보답하려
했는지, 정림사지를 복원하는데 일조하겠다는 뜻을 비친 적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 말을 들은 타 종교인들이 '부여시내 한복판에는 절대 절을 세울 수 없다'는 논리로 반대하여 무산되었다는 얘기는
들을 때 마다 속을 답답하게 만든다. 교회는 있어도 괜찮고 절은 지어서는 안돼는 이유가 무엇인지.
자기네 나라에 불교를 전해 준 고대국가의 도읍지임에도 시가지에 사찰 하나가 없다는 사실에 일본인들은 무척 의아스럽게
생각 한다는 것이다. 결국 언젠가는 우리의 예산을 투자하여 복원 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또한 세미나까지 열면서 시작했던 '삼천궁녀 진혼제'도 어느 날 슬며시
바람처럼 사라졌다. 처음 시작할 때 마치 맞불 작전을 연상케 했던 모
종교인들의 야외 집회를 생각 해 보면 여기에도 무언가 석연치 않은 이유가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전통문화의식을 종교적 관점으로 이해 하려는 편협한 사고와 나의 생각이나 내가 믿는 종교외에는 아무것도 인정하려 하지 않는 배타적 사고방식은 지역의 발전과 화합을 해치는 정말 위험한 발상일 수도 있다.
이것은 또한 신앙의 본질에서도 벗어나는 일이라고 여겨진다.
예수나 석가가 가르치려 했던 궁극적 목표는 결국 사랑과 평화, 화해, 관용, 용서에 귀착되기 때문이다.
'4월은 갈아엎는 달'이라고 했다.
우리들도 굳어있던 마음을 갈아엎고 그 위에 사랑과 평화, 그리고 관용과 용서의 씨앗을 뿌려보자.
< 2005. 4. 17 부여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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