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색시가 김장 삼십 번만 담그면 늙고 마는 인생. 우리가 언제까지나 살 수 있다면
시간의 흐름은 그다지 애석하게 여겨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기에 세모의 정은 늙어가는 사람이 더 느끼게 된다.
남은 햇수가 적어질수록 1년은 더 빠른 것이다.
피 천득님의 '송년'이란 글의 일부분이다.
세모를 맞는 우리네 심정을 너무도 잘 표현한 글이라서 언제부턴가 노트에 적어놓고
해마다 이맘때 쯤이면 한 번씩 펼쳐보곤 한다. 해마다 그 느낌이 더해지는 것은
이제는 나도 살아온 날보다 살아가야 할 날이 더 짧은 대열에 들어섰다는 반증이리라.
언제나 그랬듯이 올 한해도 아쉬움이 많이 남는 한해였다.
춘삼월, 때 아닌 최악의 폭설로 우리들 삶의 터전이 황폐화 되는 고초를 시작으로, 전해지는 소식들은 낭보 보다는
우리를 슬프게 하는 소식들로 가득 찼었다.
그 중에서도 헌정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사태 및 행정수도 위헌 판결을 가져오게 한 정치권의 행태는 더욱 그랬다.
국민들은 IMF때 보다도 살기가 더 힘들다고 야단들인데 민생을 책임져야 할 그들은 국민의 염원 보다는 정치적 당리당략에 따라 수시로 말을 바꾸며 국민을 우롱 해 왔다.
면책 특권을 이용한 '아니면 말고'식의 폭로정치가 여전 하였고 심지어는 구태 의연한 색깔 논쟁으로 장기간 국회 공전 상태를 가져왔다.
무노동 무임금은 일반 서민 근로자들한테나 적용되는 것인지 그들은 그러면서도 챙길 것 다 챙겼다는 언론 보도는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 그래서 그들은 여전히 '국회의원'이 아닌 '구케의원'일 수밖에 없다.
진보와 보수, 세대와 지역, 계층 간 갈등 등 현재 우리 사회에 양극화 현상이 심화된 이유도 따지고 보면 정치 지도자들의 책임이 크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중앙 정치인들의 행태는 조그마한 지역 정가에 까지 영향을 미쳐, 동지 아니면 적이라는 자기 기준적 판단으로 상대를 헐뜯는 소리를 심심찮게 들을 수 있었다.
한쪽에선 끼니를 잇지 못해 굶어 죽는가 하면 다른 한쪽에서는 아이들 생일 잔치로 수백만 원을 썼다는 소식이나 가장 순수해야 할 청소년들이 집단 성폭행에 연루되고 대입시 부정 행위로 고개를 떨 군 모습을 대할 때 마다 기성 세대의 잘못된 습성을 너무 빨리 배우는 것 같아 한없이 슬퍼졌다.
세상에 대한 막연한 복수심 등으로 19명의 인명을 앗아간 연쇄 살인범 유 영철 사건과 여대생. 여고생의 잇단 실종 사건 역시
많은 사람들을 경악케 하였다.
또한 진정한 국민의 봉사자로 거듭나겠다는 전국 공무원 노동자들의 의지를 국민경제를 볼모로 짓밟아 버렸다. 그것도 한 때는 그들과 똑같은 주장을 했던 사람들의 변질된 손에 의해서 그랬다는데 더욱 의아해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나마 세계 최초로 인간 배아줄기세포 복제에 성공한 황 우석 박사의 업적이나 올림픽에서 인간 드라마를 연출한 여자
핸드볼 팀, 그리고 영화인들이 세계 무대에 나아가 거둔 쾌거와 연예계의 한류 열풍이 아니었으면 달리 즐거워 할 일이
없었을 뻔 했다.
다행이도 인간은 흐르는 세월에 나름대로 마디를 만들어 놓았다. 그 마디마디를 지날 때 마다 서로의 갈등과 증오를 과거의
매듭 속에 묻어 버리고 좋은 추억만 추려서 새로운 해를 맞이 하라는 뜻일 것이다. 우리도 이제 서로 사랑하고 화합하는
마음으로 한 해를 마무리 하고 희망찬 새해를 맞이하자. 내년에는 모든 국민이 근심을 버리고 살 수 있도록 각자의 위치에서
자기 역할을 다 하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격동의 시간들이었지만 나는 비교적 평온한 한 해를 보낸 것 같다. 그것은 결국 또 주위의 많은 사람들로부터 신세만 진 한
해였다고 바꿔 말 할 수 있다. 언제나 격려와 사랑을 보내주는 친구, 선후배, 직장 동료, 가족 등 모두가 고마운 분들이
아닐 수 없다.
내년에는 나도 그들에게 진 빚을 조금이나마 갚을 수 있는 여유가 생겼으면 하는 희망을 안고, 청화 스님의 말씀을 빌려
감사를 드리고자 한다.
"이 세상 저 세상 오고 감을 상관치 않으나 은혜 입은 것이 대천계만큼 큰데 은혜를 갚는 것은 작은 시내 같음을
한스러워 할 뿐이다"
< 2004. 12. 31 부여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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