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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소산성의 양면성

서해안 나그네 2012. 1. 20. 23:01

 

부소산성을 거닐다보면 이따금씩 정 반대의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다.    

좋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볼 게 뭐 있느냐는 관광객도 있다.

언젠가 삼충사 단풍나무 터널을 지나면서 앞서가는 중년의 관광객몇 분이 주고받는 소릴 들었다.
"이리 존데 그 복잡한 델 뭐하러 갔노. 진작 이리 올 걸. 도자기 그 뭐 볼거 있더나?"

대화의 줄거리로 보아 아마도 이천 도자기 축제를 갔다가 고생 좀 겪고나서 돌아가는 길에 이곳을 들른 모양이었다.

사적지에 몸을 담고 있는 사람으로서 그래도 칭찬을 해 주니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이런 기분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군창지 앞에서 만난 노부부의 "부소산 정말 볼 거 없네" 하는 한마디로 일시에

사라져 버렸다. 불과 몇 분 사이에 희비가 교차하는 순간이었다.

흔히들 부소산성 하면 낙화암, 고란사를 떠 올리게 마련이다. 하지만 가만히 뜯어보면 그곳 말고도 정겨운 곳이 얼마든지 있다. 특히 삼충사나 광장의 단풍터널과 궁녀사에서 태자천으로 연결된 낙엽지는 산책길을 걸어 보았다던지, 혹은 반월루에서 백마강의 일몰을 한번이라도 지켜본 사람이라면 부소산성의 아름다움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게다가 통철한 안목까지 겸비했다면 발 길 닿는 곳 마다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역사의 땅이니만큼 이보다 더 좋은 데가 어디

있으랴.
그래서 누군가가 말하기를 부여는 인생을 살 만큼 살아온 중년 이상의 혜안으로 바라볼 때 그 진가를 알 수 있다고 했다.

그만큼 부여라는 곳은 일반적 관광의 개념만으로는 그 심오한 맛을 알기 어렵다는 뜻일 것이다.

그러나 부소산은 누가 뭐래도 아름다운 곳이다. 굳이 '22세기를 위해 보존해야 할 아름다운 숲'으로 지정되었다는 사실을 밝히지 않더라도, 또한 담겨있는 역사적 사실을 차치하고서라도 부소산은 엄마의 품처럼 아름다운 곳이다.

비록 금년 3월, 때 아닌 폭설로 많은 부분이 훼손되었지만 부소산성의 탐방로는 여전히 푸르른 녹음과 시원한 그늘 그리고 오색단풍의 우아한 모습으로 사시사철 우리 곁을 지키고 있다.

그렇지만 부소산성이 단조롭다는 일반적 얘기들도 그냥 지나칠 수만은 없다. 혜안을 갖지 못한 관광객이 더 많을진데 이들을

위해서 관광 자원화가 가능한 부분이 있다면 적극 개발하여야 할 것이고, 그렇다고 본다면 이중에는 일제 신궁터 복원과

궁녀사 연못 조성이 어떨까 하는 견해를 가지고 있다.

묻혀버린 삼충사 부근의 신궁터를 복원한다면 일반 국민들에게는 일제 만행의 산 교육장으로, 일본인들에게는 또 하나의

볼거리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궁녀사당의 늪지에 연못을 만들어 현재 측면으로 되어있는 진입로를 목교나 석교를 통해 정면으로 건너게 한다면 사당을 통행하는 법도에도 맞을뿐더러 운치도 있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더구나 이곳은 북문지로써 역사적으로도 물을 가두었다가 필요시 내보내던 수구 역할을 하였던 곳이라니 한 번 해 봄직한 일이 아닐는지.

아무튼 부소산성은 그 의미를 알고 나면, 보면 볼수록 정겹고 눈물겹고 아름다운 곳이다. 그런데도 관광회사 직원이나

버스 기사의 주문에 따라 삼십분도 좋고 한 시간도 좋은 그런 관광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제 이런 기존의 잘못된 관광 패턴에서 벗어나 지루하지 않게 긴 여정을 보낼 수 있도록 우리 모두의 지혜를 모아야 할 때이다.

<2004. 12. 1 부여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