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의 요모조모

휴일 산책, 부소산성

서해안 나그네 2015. 2. 22. 23:34

 설 연휴의 마지막 날,

집에 있기 답답하여 모처럼 운동겸 부소산엘 올랐다.

황사가 심하여 안내소에서 직원들과 잡담을 나누는 동안에도 오를까말까 몇 번을

망설였다.  기왕 나온김에 올라가보자 하고 나섰는데 역시 시야가 매우 흐렸다.

 

 

 

부소산 정문을 들어서 넓은 마당을 지나면 부소산성 초입에 이런 길이 나타난다.

석판을 깔아 놓아서 지압효과가 있는 이런 길도 있는가 하면,

 

 

바로 옆에는 노약자나  장애인, 또는 유모차가 다닐 수 있는 길도 함께 만들어져 있다.

 

 

삼충사중건사적비

위의 길을 좀 오르면 세 갈래 길이 나타난다.  시간이 부족하여 낙화암, 고란사 정도만 관람하고

갈 경우라면 왼쪽길을,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옛 산성의 정취와 유적들을 음미하며 유유자적하고픈 사람이면

오른쪽 길을 택하면 된다.  나는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맨 먼저 삼충사에 들른다.

 

 

 

삼충사중건사적비의 내용

 

삼충사 입구의 의열문(외삼문)

 

중간의  충의문(내삼문)

 

 

 충의문을 들어서면 삼충사 본당이 나온다.

 

삼충사는 백제 말기의 삼충신, 즉 성충. 흥수. 계백을 모신 사당이다.

1957년 삼충사 봉건기성회라는 모임에서 삼충사를 처음 지었으며, 국가에서 성역화 작업을 하여

1981년 11월에 다시 지었다.  매년 10월 백제문화제 행사 때에 삼충제를 지내고 있다.

 

 

백제시대 치미를 재현 해 놓은 건물 중 이곳 삼충사의 치미가 가장 아름다운 것 같다.

 

 

삼충사 옆에 연못이 있다.  내가 근무할 때에는 저쪽 높은 바위틈에서 물이 흘러 내리게끔 시설을 하고

고기가 노닐도록 하였었는데 어느 날 부터 없어져버렸다.  오늘은 개구리들이 온통 소란을 피우고 있었다.

 

 

삼충사에서 영일루로 이어지는 초입으로 여름이면 파랗고 가을이면 붉게타는 단풍나무 터널로 매우 아름다운 곳이다.

 

언제 만들었는지 단풍터널 옆으로 남문지 가는  계단길을 만들어 놓았다.

내 개인적인 견해로는 불필요한 시설을 해 놓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미 삼충사 옆으로 산성을 타고 반월루로 이어지는 오솔길이 나 있으며,  삼충사와 영일루 중간쯤에도

산성길이 잘 나 있는데  구태여 예산을 들여 이런 새로운 길을 만들 필요가 있을까!

숲은  있는 그대로가 좋다. 더구나  유적지는 더욱 그렇다.  차라리 보기 흉한 정문 광장 같은데나 보수를 할 것이지---

 

 

위에서 말한 산성길이다.  영일루 못미쳐서 있는데  이곳으로 가면 반월루와 만난다.

 

 

영일루

 

영일루는 백제시대 때 계룡산의 연천봉에서 떠오르는 해를 맞이하던 곳이다.

현재의 영일루 건물은 1964년 5월 건립된 것으로 홍산에 있던 문루를 옮긴 것이다.

건립 당시 공사중에 백제시대의 기와 조각이 다수 출토 되었다.

 

 

영일루 현판 글씨는 부여 홍산 출신의 서예가 원곡  김기승 선생의 글씨이다.

영과 누자는 크게 하고, 일자는 작게 썼는데, 이것은 산봉우리 사이에 해가 떠오르는 모습을

나타낸 것이다. 

 

 

누각 안의 인빈출일(寅賓出日)은 청양군 정산 출신의 서예가 정향 조병호 선생의 작품이다.

인빈출일은 『서경』요전에 나오는 말로 "삼가 공경하면서 뜨는 해를 맞이한다"는 뜻이다.

 

 

영일루 중수기는 낡아서 읽어보기가 힘들다.  보수가 시급하다.

 

 

 

 

군 창 지

 

군창지는 1915년에 불에 탄 쌀이 발견되어 세상에 알려진 곳으로 일명 만리창이라 불리워 왔던 유적이다.

그래서 1981년과 82년 2차에 걸쳐 발굴조사가 실시 되었다.  1차년도인 1981년 9월과 10월까지는 '口'자 형태를

이루는 4기의 조선시대 건물지가 확인 되었으며, 2차년도인 1982년 9월부터 10월까지는 건물지 주춧돌의

아래층에서 자연 암반층을 파내어 만든 구덩이를 조사하였다.

 

발굴조사 결과 조선시대의 불에 탄 곡식과 기와, 토기, 도자기 등이 나왔으며, 글자가 새겨진 암기와가 나오기도

하였다.  또한 2차 발굴 때에는 백제시대의 유물도 약간 나왔다. 

이상에서 알아본 것처럼 군창지는 백제시대의 것이 아니라 조선시대의 유적으로 판명되었다.

이미 알려진 불에 탄 곡식이 발견된 군창지는 조선시대에 해당되는 건물지이며, 백제시대의 것은

이보다 밑에 위치 해 있다. 물론 이 백제시대의 건물지도 이곳의 지형상 군사 목적의

건물지로 추정되고 있다.

 

 

군창지 발굴 당시의 사진

 

 

군창지를 보고 이어지는 탐방로를 따라가게되면 수혈지와 반월루로 이어지지만

나는 발길을 바로 아래 산성길로 돌려 오던 방향으로 되돌아간다.

태자골로 가기 위해서다.

 

 

북문지 발굴 현장 사진

부소산성은 성문이 동서남북 4곳에 설치되었었다.

 

 

 

 

수구지 발굴 사진

 

 

 

 

부소산성의 형식은 테뫼식과 포곡식이 혼합된 백제의 독특한 복합식 산성이다.

테뫼식 산성은 다시 2개의 큰 구역으로 구분되는데 중심성에 해당하는 부분은 군창지. 영일루를 그 가운데에 두고

그 남쪽 경사면까지를 포함하여 쌓은 길이 840m 정도이다.

군창지를 에워싼 산성에서 반월루에 이르는 지역에 또 다른 테뫼식 산성이 배치되어 있어 다시

군창지 동측과 반월루에서 사비루(사자루)를 향하여 북행하는 산성이 골짜기를 감싸며 포곡식으로

부소산을 크게 둘러쌌는데, 그 둘레는 약 1.7km 정도가 된다.

 

 

치의 발굴사진

 

 

 

 

 

 

나그네의 목마름을 달래주는 태자골 약수터

 

 

 

 

태자골 산책로.

부소산의 탐방로 중 유일하게 흙길 그대로 보존되어 있을뿐만 아니라  옆으로 백마강을 배경으로 아름다운

숲길을 걷노라면 자신도 모르게 힐링됨을 느낀다.  연인들의 산책기로 안성맞춤이다.

 

 

태자촌 숲길 사이로 보이는 경치.  황사때문에 전망이 밝지 못하다.

저 다리를 건너면 백제문화단지로 통한다.

 

 

궁녀사 입구 늪지에 개구리들이 빈병을 놓고 서로 올라 타려고 아우성이다. 

얼마나 시끄럽게 울어대는지 사람이 가도 끄덕도 하지 않는다.

 

옆에는 벌써 저렇게 산란을 해 놓았다.  계절이 바뀌고 있음을 실감했다.

 

 

궁 녀 사

 

궁녀사는 660년 7월 백제가 멸망할 때에 충절을 지키려고 낙화암에서 죽음을 택한

이른바 3천 궁녀로 불리는 백제여인의 고귀한 넋을 추모하기 위하여 1966년에 건립한 사당이다.

매년 백제문화제 때에 부여군여성단체와 부여여고생들이 궁녀제를 올린다.

 

 

삼천궁녀 영정

 

 

반 월 루

 

 

 

 

반월루에서 바라본 부여 시가지. 황사가 얼마나 심한지---

 

반월루에서 바라본 백마강.  운 좋으면 이곳에서 백마강의 아름다운 일몰을 볼 수도 있다.

 

 

반월루에서 본 산성

 

 사 자 루

 

사자루(사비루라고 해야 맞는다)는 백제시대의 송월대 터에 있는데, 지금의 건물은

1919년 임천에 있는 임천문루(배산루)를 옮겨서 지은 것이다.

 

사자루는 부소산의 최정상(해발106m)에 위치해 있으며, 1919년 터를 닦다가 불상의 광배에 글씨가 새겨진

백제시대 금동삼존불입상(보물 196호)이 발견되기도 하였다.

 

 

 

사자루의 현판 글씨는 의친왕 이강의 글씨이다.

 

 

사자루 뒤쪽에 있는 해강 김규진 선생의 백마장강

 

사자루에서 건너다 본 백제문화단지 쪽

 

왼쪽으로 보이는 넓은 곳에 현재 오토캠핑장이 공사중이며, 오른쪽 나무뒤로 흰 기둥처럼

보이는 곳이 수상레져 선착장이다.

 

 

낙화암 내리막길이 시작되는 지점에 서 있는 연리지

 

 

낙화암 백 화 정

 

 

 

 

 

 

 

 

낙화암에서 바라본 풍경. 멀리 백마강교가 희미하게 보인다.

 

 

 

 

 

고란사 선착장

 

 

 

백마강 유람선

 

고 란 사

 

고란사는 고려시대 때에 낙화암에서 떨어져 죽음으로 절개를 지킨 백제여인들을 추모하는

의미로 지어진 절이다.  백제시대에는 이곳에 절이 아닌 정자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절 이름은 뒷쪽 바위에서 자라는 고란초에서 유래하였다.

고란사는 법당, 요사체, 범종각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는데, 현재의 법당 건물은

1959년 은산면 각대리에 있던 숭각사 건물을 옮긴 것이다.

 

지붕이 새는지 보기가 영 안 좋다.

 

 

고란사를 가기 위해서는 낙화암에서  200m정도의 이런 계단을 오르내려야 한다.

 

 

 

 

겨우겨우 맥을 이어가는 고란초

 

 

한 잔에 3년이 젊어진다는 고란약수

 

 

 

 

고란사 벽화의 일부. 3천궁녀 낙하장면을 그려 놓았다.

 

 

서복사지

 

 

- 설명 내용은 '우리고장 문화유적 길라잡이'를 인용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