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가 끝나가는 주말 2.5일이었다.
저녁 식사 후 모처럼 궁남지 산책을 나갔다. 사실 내가 하는 운동이라고는 궁남지 걷기뿐인데 올 겨울 날씨가 하도 매서워 거의 포기하였다가 모처럼 날씨가 포근하여 나간 것이었다.
아마도 시간은 7시 40분쯤 되었을 것 같다. 평소와 같은 코스로 돌고 있는데 저만큼 원두막에 누군가 반듯하게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길가에 가져다 놓은 두개의 헌 원두막으로 거기엔 사람이 올라가는 걸 보지 못했던터라 좀 의아했지만,
누군가 원두막에 올라가 오줌을 누고 있나보다 생각하며 바로 옆을 스쳐 지나쳤다.
한바퀴를 돌고 제자리에 올 때쯤 아저씨 두분이서 내게 물었다.
"저어 혹시 이곳에 마네킹도 설치 해 놓았나요?" "아뇨! 그런건 없는데요."
순간 나는 직감했다. " 저도 아까 보았는데 누군가 올라가 소변을 보는 줄 알았습니다." "아녜요. 신발 같은 게 떨어져 있는
것 같아요."
아저씨들은 가까이 가지도 못하고 이만큼 떨어져 있었다. 나는 곧장 원두막 으로 가 보았다.
정말 운동화가 흩어져 있고 한 남자가 목을 맨 채 축 늘어져 있었다. 원두막 마루에는 흰 비닐봉지도 놓여 있었다.
내가 그 분들 곁으로 돌아와 신고를 해야겠다고 전화를 꺼내자 이미 자기들이 신고를 해 놓았다고 했다.
잠시 후 경찰관들이 도착해 현장 사진을 찍고 몸을 수색했는데 다행이 지갑이 있어 쉽게 신원을 파악할 수 있었다.
흰 비닐봉투에서는 부모, 동생, 친구한테 써 놓은 유서도 발견되었다(유서 내용은 쓰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
확실한 자살 사건으로 판정한 경찰은 곧바로 장례식장 차를 불러 시신 운구를 준비했다.
잠시 후 연락을 받은 아버지도 당신의 친구와 함께 도착했다. 우리 아들이 죽을 리가 없다며 왜 현장 보존을 안했냐는듯
화를냈다. 경찰관이 모든 상황과 유서 이야기를 하자 " 내 아들 글씨는 내가 알 수 있어!" 하면서 유서를 불빛에 비춰 보고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경찰에서는 한점 의혹없이 원하는대로 사인을 밝힐 수 있도록 하겠다며 부검의도 호출을 했다.
아버지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친구들 만나러 간 아들이 주검으로 발견되었으니 얼마나 억장이 무너질 일일까.
함께온 친구분이 옆에서 그를 진정시키고 나서야 시신은 자리를 떴다.
사람의 예감이란 게 이상한 것이어서 처음 그 옆을 지나칠 때 뭔가 머리끝이 쭈삣하는 걸 느꼈었지만, 패딩모자와 귓볼이 스치는 소리가 마치 소변보는 소리처럼 들려서 차마 얼굴을 돌리지 못하고 그냥 지나갔던 것이었다.
그런데 나 혼자서 그 광경을 목격했더라면어쨌을까 생각하니 그냥 지나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또한 나 자신이 얼마나 나약한 사람인가를 새삼 깨달았다.
90년생 꽃다운 나이에 생을 마감한 한 청년의 죽음을 슬퍼하고 위로하기 보다는 정초부터 목격한 주검이금년 한 해 내 운수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 하는데 더 마음이 쓰이니 말이다.
사실 나는 사람이 목을 맨 장면을 실제로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아직도 그의 모습이 생생하여 그 후론 궁남지 밤운동을 나가지 못하고 있다.
2011. 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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