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수집

신동엽 서사시 금강 제 15 장

서해안 나그네 2024. 12. 1. 23:06

날이  갈수록

세상  인심은

스산했다.

 

노른자와  흰자가

암탉  품  속에서

스무하루를  지내면

병아리가  되어

껍질을  깨고

귀염  떨며  나온다.

 

한갓,  노른자와  흰자이던

액체가  자기  생명을  의식하고

다숩게  조직하며,

기구하며,

내일을  주장하기  시작했을  때

달걀  속의  세상은

평화가  깨지고

불안  초조해진다.

 

내부의

살의

성장에

밀려나

깨어지는  달걀  껍질은

내부의

병아리새낄

저주하리라,

반역자,  라고.

 

자각된  농민들의

성장으로

달걀  껍질은

균열되기  시작한걸까.

 

어찌됐거나

세상  인심은

날이  갈수록

수런거렸다.

 

눈  녹이  바람

이  마을  저  마을

들썩여놓고  다닐  때,

얼어붙었던

대지의  껍질도

나무의  껍질도

우리의  피부나

마음의  껍질도

싱숭생숭해지듯,

 

봉건사회의

마음은

걷잡을  수  없이

동요되기  시작했다.

 

대구   팔공산에선

이름  모를  새들이  나타나

한  달  동안

하늘의  해와  달을  가리고

싸웠다,

 

이상한  울움  우는

칼새가  나타나

양쪽  새  다  죽이고  판가름냈다

땅에  떨어지는

새의  시체가

소나기  같았다,

 

이상한  소문은

꼬리를  이었다.

 

오대산  속에선

소나무에  꽃이  피었다,

 

평안도  용강

우물  속에선

용대가리  같은

깜정  꽃줄기가  두  개,

관리나  양반이  가면

종적도  없어지고.

 

수덕사에선

겨울인데

복숭아꽃이  만발했다,

 

6월  초열흘날  밤에

불비가  오리라,

그  불비를  피할  수  있는  사람은

흙에  발붙인  사람과

손에  흙묻친  사람뿐이리라,

 

무주  구천동에서

오백  명의  신출귀몰하는

군사가  훈련중이다,

석달  열흘의  불가뭄이  지나면

그  군사들이  나와

세상을  뒤집어엎고

편안한  새세상  오게  하리라,

 

가는  곳마다

정자나무  밑  모여  앉아

농민들은  긴  한숨  쉬었다,

     에이  쌍,

     하늘과  땅

     맷돌질이나  해라!

 

1893년  11월

전주  익산  등지에서,  또

농민  반란이  일어났다

고부에서도  일어났다,

허리띠  조른

삽과  지게의  행렬,  3년

부녀자까지  동원된

부역의  열매

북면  만석  저수지와

팔왕리  저수지,

 

가을이  되니

고부  군수  조병갑은

농민들에게  또  저수지  수세를  배당했다,

한  마지기당

쌀  서  말,

 

엎친  자리  덮쳤다

호남  전운사  조필영,

호남지방  납세미를

배태워  보냈는데

서울  가서  되어  보니

5천  석이  모자란다,

미안하지만  다시  징수하겠노라,

고,  이속  앞세워

마을  뒤지고  다녔다.

 

익산면에선

영수증  없는  3천8백  석의  세미  거둬

저희끼리  나눠먹고

다시  고지서를  내돌렸다,

곤장질,  당근질,  주리틀기로

난리  피우며.

 

오지영을  선두로

3천  명의  농민이

익산  관아에  모여

시위했다.

 

고부군에선

전창혁을  필두로

5천  명의  농민이

관아에  쇄도하여

시위했다.

 

조대비의  심복

고부  군수  조병갑은,

소원  들어줄  테니  전체가  해산하고

대표자  세  사람만  나와

협상하자고  제의했다.

 

나이  많은  세  사람이

자원하여  동헌  마당으로  들어갔다,

전봉준의  아버지  전창혁

김도삼,  정일서.

 

희끗

희끗

눈발  날리는

동헌  바깥마당,

수천  농민은

쇠스랑  삽,  끄을며

집으로  돌아가

하룻밤을  기다렸다.

 

이틀째도

눈은  날리고

아이들은  보채고

된장은  끓는데

소식은  없었다.

 

그  사이,

조병갑은  세  농민을

전주로  압송했다

전라감사  김문현께,

민란의  장본인을  보내오니

엄치해  달라는  편지와  함께.

 

전라감사  김문현은

세  농민대표를

형틀에  올려  반죽음  시킨  뒤

고부로  되돌려보냈다.

 

조병갑은  이미  반죽음된

세  사람을  다시

새  형틀  위  묶어놓고,  밤새도록

불로  지지고  주리를  틀었다.

 

그날  새벽

매에  못견뎌

급기야  전창혁이  죽었다.

 

눈은  닷새째나

산과  들을  덮었다.

날리다  멎고

멎었단  다시

펑펑  쏟아졌다.

 

눈  벌판을

소요하는

된장찌개

동김치  냄새,

 

마을은

쥐죽은  듯

삼엄했다,

웃음소리  하나,  거리

한가하게  나다니는

그림자  하나

찾아볼  수  없었다

 

강아지도,

수채구멍으로

얼굴을  조금  내놓았다간

이내  사라졌다.

 

다듬이소리,

어린애  우는  소리,

글  읽는  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전갈을  듣고

녹두는  관아로  갔다,

아버지의  시체는  거적자리에  싸여

창고  옆  버려져  있었다.

 

봉준은,

눈물  한  방울

말  한  마디

얼굴색  하나,

까딱

없이,

 

뚜벅뚜벅,

그  두꺼운  손으로

아버지  전창혁의

늘어진  육체를

업었다.

 

업고  문  밖에  나오니

사십여  명의  젊은이들이

기다리고  있다가  말없이

뒤를  따랐다.

 

그들은  눈길

두승산으로  가

언  땅을  파고

전창혁을  묻었다.

 

끝난  것일까,

봉준의  얼굴은

전날보다  더

너그럽고

편안해  보였다.

 

십여일  후,  고부에는

왕명받은  안핵사  이용태

역졸  8백  명  달고  나타나,

고을을  뒤집기  시작했다,

남자들은  닥치는대로  때려잡아

고기  엮듯  엮어

옥에  가두고

부녀자는  총칼로  겁탈하고,

 

집엔  불을  질렀다.

 

봉준은,

후취  부인과  아들,  딸

사랑방으로  불러놓고

조용히

마주  정좌했다,

 

남매의  머릴  

쓰다듬었다.

 

   "얼마동안  태인  친정집

   가  있어주오,

 

   석이놈,  곶감을  좋아하는데

   너무  먹어서

   배탈이랑  나지  않게,

 

   간간이  글공부시키고

   분이랑  잘  키워주오.

 

   무슨  일  혹  있더라도

   너무  놀라지  말며,

   경우  봐서

   애들  데리고

   해남땅으로  가

   변성명시켜

 

   때  기다리도록  하오."

 

봉준은  아들

석의  이마,  눈

딸  분이의  코,  입술을

번갈아  보았다.

 

까만

딸기  같은  촉촉한  눈동자

총기있는,  그러나

철없는  눈동자.

 

밖에선

눈보라가  날리고

문풍지가

심란스럽게  울었다.

 

며칠  뒤

봉준은

먼  빛으로  보았다,

불에  싸인

자기  집.

 

그리고,  밤하늘

아름답게  수놓으며

불타는  자기  마을과

이웃  마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