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글 모음

직업

서해안 나그네 2012. 2. 16. 23:33

 

필자가 고등학교를 졸업 할 당시에는 '하다 못 해 면서기'란 말이 있었다. 인문계 고교 출신으로서 대학 진학에 실패하고 나면 마땅히 갈만한 데가 없어 대개는 공무원 시험에 응시, 면서기의 길로
들어서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래서 생겨난 말인 것 같다.

나 역시도 그런 부류의 출신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해의 4월에
5급을류 지방행정직 공채시험을 치르고 8월에 발령을 받았으니, 약 6개월 정도는 실업자 생활을 한 셈이다.

인근의 k사대 진학에 고배를 마시고 재수할 형편은 못되니 군대 가기 전 까지만 면서기 생활 하다가 나중에 다시
대학 진학하여 좋은 직장으로 옮겨야지 했던 게 오늘에 이르고 있다. 군대를 제대하고 나니 20대 중반이 되어버렸고 의지가 약한 나로서는 걷잡을 수 없이 빠르게 지나가는 세월속에 안주하고 말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40대에 만학의 꿈을 이루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직장 생활이나 내 개인적 삶에 얼마나 크게 도움을 주고 있는지는 아직 잘 느끼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하다 못 해 면서기'였던 직업이 요즈음 젊은이들에게는 선망의 대상이라니 참으로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보통 몇 십대의 경쟁률은 보통이고 세 자리 수 경쟁률을 보이는 경우도 적지 않다. 심지어 환경미화원이나
주차단속 요원 선발에 대학원 졸업자들도 응시한다는 보도를 접할 때면, 도대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것인지 안타까운 생각도 든다. 오죽하면 대학 졸업식이 곧 백수 입학식이라는 말이 생겨났을까.

솔직히 30여년 가까이 공무원 생활을 해 오면서 그다지 직업에 대한 자부심을 느껴보지 못했었는데 최근 젊은이들한테 가장 인기 좋은 직업군 중의 하나로 급부상 했다니 그나마 좀 위안이 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이러한 구직난의 어려운 시대를 만들어 낸 기성세대의 한사람으로서 미안한 생각도 든다.

직업의 중요성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일본 메이지 시대의 계몽 사상가 후꾸자와유키치는 '세상에서 가장즐겁고
훌륭한 것은 일생동안 일관할 수 있는 일을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 적고 있다.

또한 안 병욱 선생은 인생의 3대 선택 중 첫째는 직업의 선택이요, 둘째는 배우자의 선택이요, 셋째는 인생관의
선택으로 직업을 가장 중요시 하고 있다. 그분의 말에 따르면 '산다는 것은 일하는 것, 즉 생즉업이요, Living is working이다. 직업이란 말은 사랑, 낭만, 자유, 행복과 같은 멋이 풍기는 말은 아니지만 그러나 인생에서
직업처럼 중요한 것이 없다'고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의 직업에 대해 만족감을 가지고있지 못하다고 한다.
그러나 오늘날의 실정은 이런 배부른 소릴 할 때가 아닌 것 같다. 일 할 수 있는 직장을 가지고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늘 감사하여야 하며 매사에 충실하여야 한다.

직장에 대한 불평, 자기 현실에 대한 불만은 오늘도 새벽부터 도서관에 앉아 취업 준비에 고통을 겪고있는 수많은
젊은이들에게는 사치스럽고 거만한 몸짓이 아닐 수 없다.

<2006. 5. 25 부여투데이>

'지난글 모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동연꽃축제에대한 소고  (0) 2012.02.17
제5대 부여군 의회에 바란다  (0) 2012.02.16
정당 공천제, 이대로 좋은가  (0) 2012.02.16
손님 없는 행자부 식당  (0) 2012.02.12
기업이 지역에 미치는 힘  (0) 2012.0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