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청, 거제, 통영, 순천을 거치는 3박 4일간의 마지막 일정으로 담양을 찾았다.
약 3개월 전 휴일에 찾은 죽녹원 부근에는 주차 할 곳이 없을 정도로 혼잡하더니
이번엔 평일이라서 그런지 매우 한적하였다.
동료들과 죽녹원과 20여 키로 떨어진 소쇄원을 둘러보는 것으로 일정을 마무리 하였다.
해설사 선생님으로부터 설명을 듣고 있는 분임원들. 날씨도 쌀쌀했는데 우리 때문에 고생을 많이 해 주셨다.
이렇게까지 흔적을 남겨야 했을까! 나무에 낙서를 하지 말라는 안내문이 걸려 있었는데도 곳곳에 이런 흔적들이 즐비하다.
이곳에 가면 장인의 손을 통해 새롭게 태어나는 대나무의 신비로움을 만날 수 있다.
내년에는 박람회도 개최할 모양이다.
소쇄원은 조선중기 梁山甫(1503~1557)가 조성한 대표적인 민간 별서정원이다.
양산보는 스승인 조광조가 기묘사화(1519)로 능주로 유배되고 사사되자 세속의 뜻을 버리고
고향인 창암촌에 소쇄원을 조성하였다.
소쇄원의 조성 연대를 정확히 말하기는 어려우나 양산보가 낙향한 1519년 이후부터
조성되기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이후 송순, 김인후 등의 도움을 받고 그의 아들인 자징과 손자인 천운 등 3대에 걸쳐
완성되면서 후손들의 노력에 의해 오늘에 이르렀다.
소쇄원은 조선중기 호남 사림문화를 이끈 인물의 교류처 역할을 하였다.
면암 송순, 석천 임억령, 하서 김인후, 사촌 김윤제, 제봉 고경명, 송강 정철 등이
드나들면서 정치, 학문, 사상 등을 논하던 구심적 역할을 하였다.
- 홍보 팜플릿 중에서-
소쇄처사양공지려
해설사님의 얘기로는 우암 송시열 선생의 글씨라고 한다.
곧 터질듯한 산수유나무가 지나온 세월을 말해주는 듯 하다.
저렇게 위태롭게 받쳐놓은 돌기둥이 여지껏 물결에 무너진 적이 없단다.
양산보는 송의 명필 황정견이 주무숙의 사람됨을 <광풍제월(光風齊月)>에 비유한 것에 유래하여 대표적 건물을
각각 제월당과 광풍각으로 이름지었다고 한다.
'비개인 하늘의 상쾌한 달'이라는 뜻을 간직한 제월당에 한 외국인이 한국의 멋에 흠뻑 빠져있다.
'비갠 뒤 해가 뜨며 부는 청량한 바람'이라는 뜻의 광풍각.
이곳은 손님을 맞이하는 사랑방으로 사용되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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