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비문 주변을 산책하던 중 안내판 뒤에 쓰러져 있는 낯선 사람이 목격되었다. 다가가 보니 허술한 차림새로 바짝 웅크리고 잠들어 있는 모습이 한눈에도 부랑인임을 알 수 있었다.
옆에는 마시다 만 소주병과 바지 주머니에서 흘러나온 사탕 몇 개가 흩어져 있었다. 왜 하필 관광지인 이곳에 와서 잠들었을까 하는 생각에 흔들어 깨워 보았지만, 지독한 술 냄새만 풍길 뿐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설마 별 일이야 있으랴 하는 마음으로 발길을 돌렸다.
퇴근 무렵 그 아저씨가 다시 생각나 올라가 보았다. 처음 보았던 모습 그대로 누워 있었다. 순간 '혹시?'하는 섬뜩함이 섬광처럼 스쳐 지나갔다. 코끝에 얼굴을 대보니 다행히 숨결이 느껴졌다. 오히려 그 모습이 이상하리만큼 평온 해 보였다. 조용하고 평온하기 이를 데 없는 그의 잠자는 모습에 한동안 도취되어 있던 나는 이내 '저러다 사고라도 나면---'하는 본래의 생각으로 돌아왔다.
관광지 미관이 문제가 아니라 관할 구역 내에서 행여 사망자가 발생했을 때의 처리 문제가 훨씬 더 복잡한 일일 수도 있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다행히 목격한지 3시간이 넘도록 차디찬 땅바닥에서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술기운 때문인 것 같았다.
어떻게든 내보내야 된다는 생각으로 상체를 안아 일으켰다. 얼마 동안이나 물 구경을 못했는지 역겨운 체취가 코를 찔렀지만 포기할 순 없는 일이었다.
그 아저씨는 그제서야 눈을 뜨고 물끄러미 주위를 살폈다. 이런데서 자면 어떻게 하느냐며 빨리 이곳에서 나가 달라는 나의 호통 소리에 그는 비틀거리는 몸을 겨우겨우 가누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얼마 되지 않는 큰길까지 몇 번이고 가다쉬다를 반복하면서 겨우 시내 쪽으로 걸어 나가는 모습을 확인하고 나서야 안심하고 퇴근을 했다.
그러나 그 아저씨는 다음날 또 나타났다. 저러다가는 노숙자로 이곳에 터를 잡을지도 모르니 단단히 나무래서 돌려보내야겠다고 다짐 했다.
내가 씩씩대며 다가가는데도 그는 누가 오든 말든 개의치 않고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이름 모를 빙과류를
먹고 있었다. 곁에 놓아 둔 소주병은 한 잔 정도 비어진듯 한데 이미 그 아저씨는 만취가 되어 있었다.
어디선가 전작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왜 또 왔어요? 여기 오면 안된다고 말했잖아요!"
내가 퍼붓는 심한 말에도 그는 아랑곳 하지 않고 종이컵에 든 얼음 과자만 집어먹고 있었다.
안되겠다 싶어 냅다 아저씨의 소주병을 빼앗아 바닥에 따라 버렸다. 그러자 그렇게 소리쳐도 아무 반응이
없던 그가 고개를 푹 떨구며 푸욱 푸욱 한숨을 내쉬는 것이었다. 그 표정은 실망과 분노가 뒤섞인 그런
표정이었다.
순간 '아차! 내가 너무 했구나'하는 생각이 번뜩 스쳐갔다. 그렇게 다그쳐도 끄덕 않던 그가
' 이 더러운 곳엔 절대 오지 않겠다'는 듯이 거칠게 몸을 흔들며 떠나갔다.
그 후 그는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아저씨의 마지막 모습은 나의 뇌리를 떠나지 않고 있다.
형님 한 분도 결국 술을 이기지 못해 2년 전 세상을 떠나셨다. 형도 마찬가지로 거리에 쓰러지셔서 동네
어른들 신세를 진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이렇듯 알코올 중독이란 어느 일정 선을 넘으면 술을 먹지 않고서는 견디지 못하는, 즉 술이 곧 주식인 것을, 나는 그 아저씨의 가장 맛있는 음식을 빼앗아 버린 것이다. 더구나 아저씬 아무도 알지 못하는 자기만의
사무친 사연들을 술로 달래고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지금도 그 어디선가 소주 한 병을 구하기 위해 힘든 구걸을 하고 있을지도 모를 아저씨!
추워지는 날씨에 잘 지내시는지---
"아저씨! 정말 죄송해요. 언제 한 번 오시면 제가 꼭 술 한 잔 사드릴게요. 내쫓지도 않을 거고요."
<2004, 10. 26 부여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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