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년, 내가 처음 면사무소에 발령 받았을 때의 월급이 5만 5천원 정도였다.
그래도 공무원이 되었으니 양복 한 두 벌은 있어야 하겠기에 면소재지 양복점에 가
이야기를 하니 3~4개월 할부로 양복 한 벌을 맞춰 주어서 고맙게 입었던 기억이 있다.
어쩌다 먼저 군대 간 친구가 휴가차 놀러오는 날이면 친구와 술 한잔 먹고
하숙비 지불하고 나면 주머니가 텅 비기 일쑤였다.
교육가면 항상 교관이 하는 말이 "조금만 참고 견디면 공사 수준의 80%까지
끌어 올리는 게 정부의 방침"이란 것이었다. 물론 그 말을 전적으로 믿은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나만 잘 하면 중도에 잘릴 일 없고 퇴직 후 연금을 받을 수 있다는 희망 하나만으로
여태껏 버텨온 세월이었다.
물론 그 때 비하면 처우가 나아진 건 확실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사기업의 70%대 수준에
머물러 있는 급여는 상대적 빈곤감을 안겨준다.
"그래도 너희들은 정년과 연금은 보장 되잖아" 란 말이 유일한 낙이었다.
그러나 평생직장이란 개념도 98년 IMF 이후 깨져버려서 많은 선배들이 자의반 타의반
자리를 떠났다.
우리도 언제 또 이런 일을 당하게 될지 아무도 모를 일이다. 그때는 그래도 연금만은
건드리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는 그 알토란 같은 전 공직자의 마지막 희망마저
빼앗아 가려 하고 있다. 30년 이상 박봉에 시달리면서도 한 가닥 위안으로 삼아오던
연금을 현 정부가 짓밟아 버리려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모 기업의 근로자들처럼 임금 올려 달라 파업 해 본적도 없었다.
적은 월급을 보충하기 위하여 부업도 가질 수 없었다.
나는 어느 정치인을 지지한다고 말 할 수도 없었고, 불량고객이 이유 없이 욕을 해 대도
국민이 주인이랍시고 가슴만 시커멓게 태워야 했다.
시국이 불안정 하면 사회 기강을 세운답시고 맨날 잡는 게 만만한 말단 공무원이었다.
천재지변으로 똑같이 피해를 입었는데도 정작 내 논은 가보지도 못하고 주민들
피해복구를 위해 날 새가며 일하는 게 공무원이었다.
어지간한 직장에선 다 주는 대학 학자금도 우리에겐 꿈같은 얘기다.
심지어는 우리가 낸 돈으로 월급 받는 연금관리공단 직원들은 학자금 혜택을 받고
있었는데도 공무원은 그저 구경만 해야 했다.
또한 지역의료보험과 통합되면서 우리가 그 적자를 메꿔준 건 아닌지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공무원연금법 제1조에는 "공무원 및 그 유족의 생활안정과 복리 향상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법을 준수하여야 할 정부가 마치 대선공약
뒤집듯 법을 어기고 있다.
곳간의 곡식을 덜어가려면 당연히 주인의 허락이 필요할텐데도 주인은 아랑곳 없이
곳간 문을 열겠다고 아우성이다.
우선 먹기는 곶감이 달다고 그동안 생쥐 팥바구니 드나들 듯 수십조원을 쏠랑쏠랑
빼다 쓴 일이나, 정부 부담율이 주요 선진국의 절반 수준도 안되는 사례 등은
일체 함구한 채 앞뒤 모두 잘라버리고 공무원 집단은 마치 세금 도둑놈처럼
국민 여론을 호도하고 있다.
고용주가 자기 머슴에 대한 의무를 다 하지 못한 잘못은 전혀 말하지 않고 언론을
나팔수로 국민 감정을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
정부 재정난이 어디 공무원 연금 탓 만인가!
22조나 퍼 부은 4대강 사업비, 총액인건비제를 빌미로 구조조정 하면서 우후죽순처럼
늘어난 공기업 부채 70조원, 게다가 낙하산 인사로 좀처럼 개선될 여지가 보이지
않는 등 정부의 무능력이 그 주요 원인이다.
야당이 야당 역할을 하지 못하는 틈을 타 정부가 자신들의 무능함에 대한 따가운
시선을 공무원연금 개악으로 돌파구를 찾으려 하고 있다.
뭉쳐야 한다.
한줌의 모래는 쉽게 바람에 날아갈 수 있지만 그 모래가 쌓여 이룬 백사장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11월 1일.
나는 가려한다.
어쩌면 더 많은 희생으로 나를 부양해 줄 후배 공무원들이 저토록 나서는데
어찌 구경만 할 수 있겠는가.
이성이 잠들면 악마가 나타난다고 했다.
그 어느 때 보다도 행동하는 양심이 필요할 때이다.
비장하고 결연한 오천 결사대의 심정으로 우리 모두 가자, 서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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