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 개심사
아내와 함께 서산 개심사를 찾았다.
오후 2시 경 출발했는데도 집에 돌아오니 6시가 좀 지났을 뿐이었다.
이 곳에 왕벚나무와 청벚꽃이 유명한 줄 진즉 알았으면 개화기에 맞춰서 갔을텐데
시들어가는 꽃들을 보니 아쉬움이 많았다.
내년에 꼭 시기를 맞춰 찾아봐야겠다.
개심사에 대한 설명은 유홍준 교수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1권에 재미있게
기록되어 있는데 그 내용을 부분부분 옮겨 적는다.
"돌계단을 만들어도 개심사 입구처럼 온 정성을 다해서, 그러나 자연스런 맛을 살리며
태를 부리지 않은 곳은 없을 성싶다. 군데군데 시멘트로 보수하긴 했어도
기본은 돌과 흙으로만 되어 있다. 자그마치 800m의 길을.
숨가쁠 것 없이 머리를 식히고 천천히 오르면 열지 말라고 해도 마음이 열린다.
그래서 개심사라고 했나? "
부처님 오신날을 하루 앞두고 행사 준비로 대웅전 앞마당이 복잡하다.
"개심사는 가야산의 한 줄기가 내려온 상왕산 중턱 가파른 비탈을 깎아
터를 잡았기 때문에 수덕사나 가야사(남연군 묘)같은 호방함은 없다.
그러나 저 멀리 내다보는 시야는 서해 바다로 뻗어가는 시원스러움이 있고 양쪽 산자락이
꼭 껴안아주는 포근함이 있다.
극락보전(보물 143호)은 수덕사 대웅전을 축소해 길게 뽑은 모양으로
'주심포계 다포집'의 맞배지붕이다. 주심포에서 다포집으로 넘어가는
과정의 집인 것이다. 1484년에 중건된 기록이 있으니 이것이 우리 건축양식
변화의 한 기준이 된다"
시들어 가는 청벚꽃. 아쉬움에 한 컷--
개심사는 건물의 기둥이나 벽면 등이 자연스럽고 아름답다.
해우소. 단아한 목조건물인데 이 안이 더욱 걸작이다.
위가 다 트인 칸막이로 네 군데 공간을 만들었다. 선암사 것만은 못해도 사찰의 토종 화장실로
여기만한 곳은 또 없을 것 같다. 청소하는 아저씨 말에 따르면 아이들이 왔다가 그냥 돌아간단다.
나라도 선뜻 이런 곳에서는 일 볼 용기가 나지 않을 것 같았다. 한 구석에 커다란 마대자루에 굵은 톱밥 같은 걸
담아 놓았는데 칸막이에 붙은 안내문을 보니 그 용도를 알 것 같다.
그 옛날 시골의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이 화장실도 머지않아 역사속으로 사라질 판이다.
옆에 새로운 화장실이 건축중에 있었다.
현대식 화장실을 해우소라 칭하기는 좀 어색한 면이 있는데---
보존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져 보았다.
"작년 여름 여기에서 우연히 주지스님을 만났다. 어떻게 알고 왔냐고
먼저 묻기에 그저 좋아서 자주 다녀간다고 답했다. 주지스님 왈,
"어디 가서 좋다고 떠들지 말아요. 사람들 몰려들면 개심사도 끝이에요.
사람떼가 얼마나 무서운지 알죠?" "예."
문화유산 답사기를 쓰다보니 나는 그 약속을 못 지키게 됐다."
이 절이 유명해지게 된 것이 유홍준 교수님의 이 답사기 때문이었다는 얘기가 있다.
사실 나부터도 그 책이 나오기 전에는 개심사란 이름을 들어 본 적이 없었다.
그러고보면 그 분 때문에 유명해진 곳이 전국에 참 많은 것 같다.
언뜻 떠오르는 곳만도 정선 아우라지 옥산장, 이 곳 개심사, 우리 부여의 사하촌 식당들---
절 입구에 서 있는 이 묘하게 자란 나무때문에 아빠들이 수난을 겪고 있었다.
한 아이가 사진찍기 위해서 나무에 오르다 뒤로 넘어졌는데 여자분이
잘 돌보지 않는다고 핀잔을 주고 있다.
나무뒤에 안내판이 붙어 있는데 그냥 지나쳐서 이름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