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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 없는 수박

서해안 나그네 2012. 1. 14. 22:14

 

이따금씩 아내로부터 질책을 받는 사유가 몇 가지 있는데 오늘은 그 중 한 가지를 이야기하려 한다.

아내가 둘째 아이를 임신했을 때의 일이었다. 어느 날 저녁 식사를 마치고 난 후 아내가 "또 딸이면

하나 더 낳아야 하잖아?" 하면서 흘깃흘깃 내 눈치를 살폈다.

"뭐라고? 이 사람이 정말---" 정색을 하는 나에게 아내는
침묵으로 답했다.

원래 결혼 초 딸이든 아들이든 한 자녀만을 두기로 약속했던 것을 집안 어른들과 아내의 권유로 양보를

해서 두번째 아이를 임신하게 된 것이었다. 집안 식구들의 주장은

"사람이 형제라도 있어야지 혼자서는 외로워서 못 산다"는 것이었고, 아내도 마찬가지로 "또 딸이어도

좋으니 딱 한명만 더 낳자"는 것이었다.

말이 가비(순수 한글로 지은 딸아이의 이름)를 외롭지 않게 하기 위해서지 아들을 갖고 싶어하는 아내의

애절함이 깔려 있다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남아 선호사상은 여성이 남성보다 더 강한 것 같다. 아내의 경우만 보더라도 아들을 얻기 위해 세 자녀도

마다않더니만 지금까지도 아들 녀석한테 더 정을 주고 있으니 말이다.

아무튼 딸이든 아들이든 하나만 더 낳겠다던 아내가 병원에서 무슨 말을 들었는지 아니면 첫째로 딸을 둔

불안감 때문이었는지 갑자기 또 딸을 낳으면 셋째 아이를 갖겠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더구나 출산일을 몇 개월이나 앞둔 마당에 이런 말을 하다니---

나는 밤새 궁리 끝에 다음날 출근을 하자마자 보건요원을 앞세워 병원으로 향했다. 하나만 낳아 잘

키워보겠다던 나의 의지가 잘못하면 둘에서도 무너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들었기 때문에 나름대로

특단의 조치를 취하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정관 수술은 너무도 간단했다. 어떤 통증도 느끼지 못한 것 같았는데 끝났으니 일어나라는 것이었다.

몇 분 만에 '씨 없는 수박'이 되어버린 것이다.

아내는 "어떻게 상의 한마디 없이 그런 일을 저지를 수 있느냐"며 아우성이었다. 그 일로 한동안 아내와의

갈등이 심했었지만 한편으론 좋은 일도 있었다. 공무원 1인당 3명씩 불임수술 목표가 주어지고 만약 그

목표를 채우지 못하면 매일같이 질책을 받아야 했던 터라 나는 스스로 내 목표를 채울 수 있어 사슬에서

풀려난 느낌이었다.

게다가 당시 한 자녀 낳고 수술한 대가로 정부로부터 얼마의 장려금까지 받았다.
몇 달 뒤 아내는 다행스레 아들을 낳았고 그녀석이 지금 고 2가 되었으니 벌써 20여 년전의 이야기가

되어버렸지만, 지금에 와 생각해 보면 내가 너무 했던 것만은 확실한 것 같다.
반면에 '저사람은 뭐든지 한다면 하는 사람'이란 인상을 남겨주게 되어 때론 아내 압박용으로 편리한

점도 있다.

지금도 가끔 아내는 그때 일을 기억하며 '매정한 사람'이라고 힐책을 하기도 하고 '씨 없는 수박'이라

놀려대기도 하지만 만약 둘째가 아들이 아니었다면 아마도 그런 웃음 섞인 원망은 평생 들을 수 없었을

것이다.

요즈음 자치단체마다 출산 장려금을 지급하는 등 인구 증가 시책을 앞 다퉈 내놓는 걸 보면서 공무원

초임시절 가족계획사업에 시달렸던 일들을 생각하니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2004. 10. 8 부여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