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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관광객의 분노

서해안 나그네 2012. 2. 20. 23:37

 

새 해 첫날이자 연말연시 연휴의 마지막 날인 지난 1월 1일, 부소산성 입구에
있는 관광 안내소에 한 아저씨가 찾아왔다.

모처럼 연휴를 맞아 가족들과 부여를 찾아 왔는데 가는 곳 마다 문을 닫았다며
화가 잔뜩 나 있었다. 문을 닫았다는 얘기가 언뜻 이해가 가지 않아 내심
어리둥절했었는데 가만히 듣고보니 박물관 휴관에 대해서 말하고 있었다.

부여에는 국립부여박물관과 얼마 전 문을 연 정림사지 박물관, 백제역사 재현단지내의 백제역사 문화관 등 세 군데가 있다.
국립박물관과 정림사지 박물관이야 도보로도 한 5분 거리에 위치 해 있지만 백제역사 문화관은 규암면 합정리이니 부여 시가지와는 좀

떨어진 곳이다.

그런데 그 분은 이 세 곳을 모두 다 가본 모양이었다. 누구 한 사람 안내 해 주는 이도 없고 제대로 된 휴관 안내문 하나 없으니 혹시나 하는

생각에 다 돌아보았다는 것이었다.

시간을 허비한 것도 속상하지만 무엇보다도 아이들이 학습의 기회를 놓쳤다는 게 더욱 화가 나며, 가족이 함께 여행을 나설 수 있는 기회가

일년에 몇 번이나  되겠느냐며 더욱 언성을 높였다.

연휴기간 쉬지도 못하고 근무하고 있던 관광안내 여직원들만 아닌 밤중에 홍두깨 격으로 봉변을 당하고 있었지만 그런 일이 어디 한 두 번이랴, 그들은 그래도 미소를 잃지 않고 그 분을 설득하려 애쓰고 있었지만 좀처럼 가라앉질 않았다.

"월요일은 원래 박물관의 정기 휴일인데다, 오늘은 또 1월 1일이니 전국 어디를 가셨어도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보다 못해 한마디 거들었더니만 대뜸 퉁명스런 답변이 날아왔다.
"누가 그걸 모릅니까? 그래도 연휴가 겹칠 때면 개관을 해주고 다음날 쉬면 안됩니까? 독일 같은데 가면 다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국민의 세금으로 먹고사는 사람들이 그런 아량도 없이----."

공무원도 세금을 낼 만큼 내는 사람들이지만 그래도 국가의 녹을 먹고 사는 처지이니 세금 얘기만 나오면 움츠러들 수밖에 없는 법,

그 분의 뜻에 동조하지  않을 수 없었다. 꼭 세금 얘기가 아니더라도 그 관광객의 말에는 공감할 부분이 충분히 있었기 때문이었다. 언젠가도

백제문화제 기간 중에 박물관이 문을  닫았다가 여론의 비난을 받은 적이 있었다.

국립박물관이야 중앙정부 소관이니 어쩔 수 없다지만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백제역사 문화관과 정림사지 박물관만이라도 연휴기간 중엔 나름대로 융통성을 보여줄 수는 없는 것인지.

또한 꼭 자기 기관만의 휴관을 안내할 것이 아니라 안내문에 타 기관의 휴관일도 명시 해 놓았다면 그 관광객처럼 혹시나 하고 전부를 돌아보는 사례는 없었을 것이다.

요즈음 각 지자체마다 고객만족을 행정의 최우선으로 내세우고 있다.
박물관의 정기 휴일을 모르고 찾아 온 관광객만 탓할 게 아니라 이제는 그들이 남기고 간 말의 여운을 되새겨 보아야 할 때인 것 같다.

"국민의 세금으로 먹고사는 사람들이 그런 아량도 없이---"



-2007.2.5 동양일보 프리즘- -20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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